창원 한국산연·이천 하이디스 등 일방적 정리해고·공장폐쇄 통보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웹툰 '송곳'에서 푸르미 노조 한국지부 위원장 이수인이 "우리 회사는 프랑스 회사에 점장도 프랑스인인데 왜 노조를 거부하는 걸까요?"라고 묻자 노무사 구고신이 한 대답이다.

이 대사는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불거지자 무책임한 외국인 투자 기업의 경영행태를 꼬집는 말로 여러 차례 회자되기도 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와 롯데의 '기업 국적' 논란이 확산하면서 외국자본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었지만 외투기업 문제는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외투기업에 의한 고용창출ㆍ생산유발 효과 등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이들 일부가 경영난을 핑계로 대량 구조조정을 단행한 뒤 자국으로 철수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 외환위기 이후 외투기업 '급증'…세금·임대료 감면 등 혜택 다양
외투기업이란 외국인이 총 주식이나 출자총액의 100분의 10 이상을 소유한 기업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외투기업이 급증하기 시작한 시기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다.

정부는 외환위기를 극복하고자 외자유치를 위한 다양한 유인책을 시행했고 이를 계기로 외국 초국적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한국기업 투자, 제휴, 인수합병에 달려들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 총 1만5천283개의 외투기업이 우리나라에 있다.

이들은 매출 478조원, 고용 55만4천명이라는 경제효과를 불러왔다.

국가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매출의 13.4%, 고용의 6%, 수출입의 18%일 정도로 비중이 크다.

외투기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혜택도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외투기업은 첫 3년간 국세(법인세, 소득세)와 지방세(취득세, 등록세, 재산세)의 100%, 이후 2년간 50%의 세금 감면 혜택을 받는다.

또 정부로부터 임대료 50~100%를 감면받거나 신규고용 창출·연구시설 설치, 효과가 큰 투자 등을 하면 자금을 지원받을 수도 있다.

◇ 외투기업 '먹튀' 원인은 외국인 경영권 행사?
문제는 경영권이 외국인에게 휘둘리기 쉬운 구조라 소위 '먹튀' 논란이 되는 자본 철수나 노사관계 파행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일본 산켄전기가 100% 투자한 마산자유무역지역 안 한국산연은 올 2월 22일 경영악화를 이유로 생산부문 폐지를 결정하고 9월까지 생산직 61명 전원을 정리해고하겠다는 공문을 보냈다.

경남 시민단체와 노조는 공동대책위를 만들어서 5개월 동안 수차례 기자회견, 집회 등을 하고 있으나 중앙정부나 지자체는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국산연 노조는 "본사에서 임명한 사장이 구조조정을 하는데 본사는 '다른 법인의 결정'이라고 발뺌만 한다"며 "적자가 나는 건 사실이지만 10~20억원 수준으로 이는 다른 외투기업 자회사 현황과 비슷한 수치인데 이걸 핑계로 생산부문을 폐지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어 "지자체나 산업부를 찾아가면 하나같이 '강제성을 띤 요구는 할 수 없다'고 답한다"며 "외투기업에 혜택만 주고 잘못은 고치지 못하는 현실이 답답할 노릇"이라고 덧붙였다.

작년 1월 대만 이잉크(E-Ink) 경영진은 생산 부문 손실을 이유로 경기 이천에 있는 자회사 하이디스의 공장폐쇄를 결정한 뒤 직원 330여명을 구조조정했다.

하이디스 노조 관계자는 "당시 특허로 매년 1천억원 이상 수익을 거두던 회사를 경영난에 허덕인다는 이유로 폐쇄한다는 게 기가 찼다"며 "결국 제조업군 인건비가 아까워서 그런 건데 외투기업이 고용은 안 하고 특허로만 돈을 벌면 그게 우리나라 경제에 어떤 도움이 되나 싶다"고 한탄했다.

2004년 상하이자동차는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면서 '4년간 1조2천억원 투자'를 약속했으나 자동차 개발 기술만 빼돌리고 2009년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뒤 직원 2천646명을 정리해고해 아직도 '먹튀 자본'의 대명사로 불린다.

이들은 한결같이 '모기업은 주주에 불과하다'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할 무렵 쌍용차의 사내이사 구성을 살펴보면 최형탁 공동대표이사를 제외한 천홍, 란친송, 장하이타오 이사는 모두 상하이차나 그 계열사 출신이었다.

한국산연과 하이디스의 사내이사진 구성도 쌍용차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 외투기업의 7%가 '먹튀'…관련법 개정 목소리도
대구대학교 사회학과 이승협 교수의 논문 '국내 진출 외투기업 특성 및 노사관계 영향요인 연구'에 따르면 2006년에서 2010년 사이 기업 매각과 같은 자본 철수형 외투기업은 전체의 7.3%를 차지했다.

100개 외투기업 중 7개는 소위 말하는 '먹튀형 기업'이었다는 뜻이다.

노사관계 파행 문제도 심각한 편이다.

이승협 교수는 같은 기간 국내 노동쟁의 985건 중 201건이 외투기업에서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이는 전체 쟁의행위의 20%로 이들이 전체 고용의 약 6%를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노사분쟁 빈도가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현행 노동법상 외투기업이 대량 구조조정을 시행하더라도 '주주'에 불과한 모기업에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한국산연이나 쌍용차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노동법상 '사용자' 개념을 '경제적 실체'에 가깝게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모기업과 자회사로 나뉘어 있더라도 사실상 하나의 기업으로 볼 수 있을 만큼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면 모기업이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김태욱 변호사는 "기술유출이나 배임은 관련 법령으로 처벌이 가능하나 자본 철수처럼 공장 문을 닫고 구조조정을 단행하면 제재할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라며 "미국 앤슨폴리오법(Exon-Florio Amendment)처럼 국가 경제에 지장을 주는 외국인 투자는 제한하고 무분별한 구조조정을 시행하면 지원금을 회수하는 등 외국인투자 촉진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정의당 노회찬 의원은 "법적으로 외투기업에 혜택을 주는 것은 있어도 제재를 가할 순 없다"며 "외국인투자 촉진법 등 관련 법률을 개정하는 것을 현재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창원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home122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