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측 엉망, 선심성공약, 주먹구구식 계획의 결과
정치논리 배제·국책사업위원회 설립 등 시스템 개선 필요

국책사업을 추진하거나 유치하려는 기관은 수요 예측 분석 등을 담은 예비타당성 조사에 사활을 걸다시피 한다.

이 조사에서 경제성이 있고, 지역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와야 사업 추진에 힘이 실리기 때문이다.

해당 기관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갖가지 논리를 내세우고 관련 자료를 연구 용역기관에 제시한다.

'로비'까지 벌이는 게 현실이다.

이로 인해 연구 용역기관의 예비타당성 조사결과가 엉터리로 전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허점투성이 예비타당성 조사결과를 토대로 수천억원, 수조원의 예산을 펑펑 쏟아붓기 때문에 국책사업이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 청사진은 '장밋빛'…결과는 '애물단지'
18㎞의 수로와 경인항만을 건설한 경인 아라뱃길 사업에는 무려 2조6천700억원이 투자됐다.

아라뱃길은 개통한 지 4년이 지났지만,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자전거 동호인들이 즐겨 찾는 코스로 전락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아라뱃길 사업을 추진하기 전 내놓은 예측과 현재 상황은 딴판이다.

물동량이 개통 1년 차(2012년 5월 25일∼2013년 5월 24일)에는 52만1천t, 2년 차(2013년 5월 25일∼2014년 5월 24일)에는 49만2천t에 불과했다.

3년 차(2014년 5월 25일∼2015년 5월 24일)에는 68만9천t으로 소폭 늘었다.

하지만 이런 물동량은 KDI가 예측한 것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

KDI 예측치의 7.7%, 6.9%, 9.1%에 불과할 뿐이다.

이 사업을 검토할 당시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다른 나라 사례를 제시하며 "엄청난 국고만 축낼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런 경고는 무시됐고 사업은 추진됐다.

'장밋빛 분석'이 '국고만 축낼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삼켜버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수조원을 들여 '자전거 길'을 조성한 꼴이 됐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도 "2008년 작성된 KDI 물동량 예측치가 과다하게 추산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국제공항을 꿈꿨던 전북 김제공항도 비슷한 사례다.

정부가 480억원을 들여 매입한 158㏊의 땅은 현재 방치되거나 배추밭으로 임대되고 있다.

주민들은 '황금 배추밭'으로 부르며 조롱할 정도다.

건설교통부는 1998년 김제시 백산면 일대에 공항건설 계획을 세우고 2002년 용지매입과 함께 건설업체까지 선정했다.

당시 시민단체들은 '경제성이 없는 내륙 공항'이라며 백지화를 주장했고 감사원은 2003∼2004년 '현미경 조사'에 나섰다.

2001년 실시설계 때 324만명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던 항공수요가 감사원의 재조사에서는 절반에 훨씬 못 미치는 136만명으로 뚝 떨어졌다.

경제적 타당성도 애초 조사와는 달리 낮은 것으로 나왔다.

결국, 공사는 중단됐다.

'고무줄 수요 예측'으로 총 사업비가 1천474억원에 달하는 공항건설을 결정한 셈이 됐다.

◇ 선심성 공약…주먹구구식 계획도 한몫
수요 부풀리기는 무리한 선심성 공약 추진, 주먹구구식 계획 등과 맞물려 혈세 낭비라는 재앙을 부른다.

185억원을 들여 지난 4월 문을 연 호남고속철도 공주역은 하루 평균 이용객이 400여명에 불과하다.

건설 당시 기대치인 1천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이 역은 '유령역'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역은 공주, 부여, 논산 중간에 있다.

국토부는 공주역의 위치를 전문기관 용역, 공청회 등을 통해 확정했다고 설명했지만, 주민들의 시각은 완전히 다르다.

지방자치단체 간 유치경쟁이 과열되면서 '이상한 역'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상선 충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는 "지역 이기주의와 전근대적인 의사결정으로 정책이 집행된 대표적인 사례"라고 꼬집었다.

3천567억원을 들여 2002년 개항한 강원 양양공항은 2008년 하루 평균 이용객이 26명에 불과했다.

영국 BBC 방송은 "세계적으로 가장 조용한 공항"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 공항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걸면서 추진돼 1997년 착공했다.

당시 정부는 통일 대비 거점공항으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그러나 잘못된 수요 예측과 선심성 공약이 불러온 대표적인 예산 낭비 사례가 됐다.

전남 해남군 화원면 일대 507만3천㎡의 오시아노 관광 단지는 현재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다.

정부는 이 일대를 관광단지로 지정하고 1995년 토지매입에 나섰다.

이 사업을 추진하는 데 1조1천809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했다.

기반시설 구축에 1천58억원을, 한국관광공사가 토지매입 등에 2천445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숙박·상가·운동오락시설 및 휴양시설 등은 민간자본 8천306억원을 유치해 짓기로 했다.

이에 따라 관광공사는 계획된 예산을 모두 투입했고 정부도 총 투자액의 25%를 투입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투입된 민간자본은 725억원에 불과하다.

2009년 골프장 1곳을 조성하는 데 투입된 게 전부다.

애초 계획했던 숙박시설 건립 등 민간 투자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광산업 활성화라는 거창한 구호에 밀려 인구 유입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주먹구구식 계획이 후속 투자를 끌어내지 못한 것이다.

◇ 정치논리 등 배제한 사전 분석 필요
대규모 국책사업이 '돈 먹는 하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철저한 사전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

시민단체나 전문가들이 정치적 논리나 특정 지역의 이해를 배제한 수요 예측 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김제공항은 정확한 수요 예측이나 타당성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데다 주민 의견 수렴과정 없이 추진돼 엄청난 혈세만 낭비했다"고 비판했다.

이런 점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최근 제안한 '국책사업위원회' 구성을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승섭 경실련 국책사업감시팀 부장은 "국책사업에 앞서 진행하는 수요 예측과 예비타당성 분석에 정치권이나 조사를 의뢰한 기관의 의지가 반영돼 객관적인 분석이 이뤄지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국책사업위원회 같은 독립적인 기구를 만들어 장기 계획에 따라 사업을 추진하고, 잘못된 수요 예측 등에 대한 책임을 묻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기헌 충청대 행정학과 교수도 "자치단체 역시 단체장의 치적 쌓기용으로 국책사업을 유치할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역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전국종합연합뉴스) 변우열 기자 bw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