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판 초기 투자성향분석 생략 비율 농협은행 65%·하나은행 31%

일부 은행이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출시 초기에 고객의 투자성향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은 채 가입자들을 받는 데 급급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국회 정무위원회 박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31일 기준으로 NH농협은행 유치 ISA 고객 18만7천606명 가운데 65%인 12만1천939명에 대한 투자성향 분석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고객 10명 중 6명꼴로 투자성향을 분석하지 않은 셈이다.

KEB하나은행도 42만8천594명의 가입자 중 31.8%인 13만6천161명의 투자성향을 분석하지 않았다.

비율로는 농협은행에 뒤졌으나 인원 수로는 더 많았다.

이 밖에 투자성향을 분석하지 않은 비율이 높은 곳은 국민은행 5.1%, 기업은행 4.5%, 우리은행 3.4%, 신한은행 2.0%, 경남은행 0.9%, 전북은행 0.1% 순으로 조사됐다.

금융투자 상품을 주로 취급해 온 증권업계에선 투자성향 분석을 하지 않은 사례가 훨씬 적었다.

22만1천여명이 19개 증권사를 통해 ISA에 들었지만 이 중 투자성향 분석을 거치지 않은 고객은 1천464명(0.7%)에 그쳤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의 '적합성 원칙'에 따르면 은행, 증권사 등 금융사는 고객의 투자성향에 맞는 금융상품만 팔아야 한다.

이를 위해 금융사는 고객을 상대로 투자 경험, 원금손실 감내 여부 등을 묻는 설문조사 형식의 투자성향 분석을 반드시 해야 한다.

다만 예외적으로 고객이 스스로 이러한 절차가 필요 없다고 판단해 '투자 권유 불원서'라는 확인서를 작성하면 투자성향 분석을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투자경험이 풍부한 고객을 위해 마련된 예외적 제도인 만큼 펀드나 파생결합증권 같은 고위험 상품이 담길 수 있는 ISA 가입자를 받을 때는 투자성향 분석을 제대로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투자성향 분석을 생략할 수 있는 예외 규정이 있지만 이를 일반 고객 절대 다수에게 적용한 것은 편법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ISA 시판 첫날인 지난 3월14일 농협은행은 전체 가입자 32만2천990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16만여 명을 유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성할 서류가 많아 한 명의 ISA 가입자를 등록하는 데 한 시간가량 걸리던 상황에서 농협은행이 첫날 많은 가입자를 받은 것에 대해 일각에선 투자성향 분석 절차를 생략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농협은행 측은 이에 대해 "ISA 고객 대부분이 원금이 보장되는 지역 농협의 예금 상품에 들어 투자성향 분석을 일부 생략한 경우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하나은행도 "ISA 시행 초기 정기예금과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 등 원금이 보장되는 상품에 가입하는 비율이 높아 고객들 스스로 투자성향 분석을 원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용진 의원은 "투자성향 분석을 편법으로 비켜간 것이 당장 고객의 손해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더라도 투자자 보호라는 대원칙을 무너뜨리는 중요한 위반행위로 간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ch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