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우문해답
“여보, 출장 좀 그만 가면 안 돼요?” 처음엔 그런가보다 하던 아내가 언젠가부터 같은 푸념을 되풀이하고 있다. 잦은 출장에 대한 불평이 볼멘소리에 담겨 있다. 공무로 다니는 해외출장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내의 넋두리에 그냥 웃음으로 대꾸한다.

아닌 게 아니라 매달 출장 다니는 것이 일이다. KOTRA 사장으로 온 뒤 해외는 원 없이 다니고 있다. 공무원 때는 해외출장 다닐 일이 많지 않았다. 통상 분야가 아닌 산업 관련 부서에서 주로 일했고, 직급이 높아진 뒤에는 그만한 의미와 비중이 있는 출장 기회가 흔치 않았던 탓이다.

그런데 요즘은 줄줄이 잡히는 해외출장으로 숨이 찰 정도다. 헤아려보니 지난 1년 반 동안 180여일을 해외에서 보냈다. 3분의 1에 해당하는 일수다. 지구 13바퀴를 돌면서 총 38개국 52개 도시를 방문했다. 매달 열흘 정도 해외출장을 소화하기는 쉽지 않다. 국내 일정을 미리 조정해야 하므로 휴일이나 공휴일을 끼고 출장을 갈 수밖에 없어 체력 소모가 크다.

그래도 이만큼 체력이 돼 다행이다. 어떤 이들은 중남미에 한 번 다녀오면 1~2주 여파가 있다고 한다. 나는 중남미에서 돌아온 바로 다음주에 다시 간 적도 있는데 견딜 만했다. 한 달 사이 중남미,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남반구의 3개 대륙을 모두 방문한 적도 있다. 지난봄에는 직항이 없는 이란을 세 차례 오가면서도 별 탈 없이 일정을 소화했다.

출장 스케줄은 연중 빽빽하다. 우선 정상외교 때마다 경제사절단으로 참가해 KOTRA가 주관하는 1 대 1 상담회를 현장에서 지휘해야 한다. 그리고 10개 해외본부별로 무역투자 확대전략회의를 주재하면서 지역별 기회 요인을 발굴하고 직원들을 독려해야 한다. 이 밖에 상품전과 설명회 등 예정된 행사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래도 출장을 미루거나 취소한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발품을 파는 만큼 보람과 성과가 크기 때문이다. 사장 참석 여부에 따라 행사의 격이 달라질 수 있다. 사장이 불원천리(不遠千里)로 달려가면 상대 국가에서도 화답하듯 더 높은 직급의 관계자들이 참석한다. 그러면 우리 직원과 기업인들이 그만큼 해외 네트워크를 넓힐 수 있어 비즈니스에 큰 도움이 된다.

임기 반환점을 돌고 있다. 더 많이 여장을 꾸려서 뛰어야겠다. 수출환경이 어려울수록 해외시장을 두드려야 한다. 그래야 경제가 산다. 우문해답이다. 우리의 문제는 해외에 답이 있다.

김재홍 < KOTRA 사장 jkim1573@kotra.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