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부양책 시사, 유로존·中·日도 고심…돈값 더 떨어질수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이후 각국 금융당국이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영국은 이미 중앙은행과 재무부가 적극적인 경기부양 추진을 시사했고 유럽중앙은행(ECB)은 기존 양적완화 정책의 확대를 저울질 중이다.

통화가치 급등에 직면한 일본과 스위스 등은 돈을 무한정 풀어서라도 돈값 상승을 막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시기는 또다시 불투명해졌고 인하 관측도 고개를 든다.

미국(통화긴축)과 유럽·일본(통화완화) 사이의 통화정책이 정반대 방향으로 가면서 이른바 '대분기'를 맞을 것이라는 전망은 쑥 들어가버렸고, 완화 일변도로 수렴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세계 각국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대규모 양적완화에 나선 데 이어 브렉시트를 계기로 돈풀기 경쟁에 돌입할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돈풀기는 통화가치 절하로 이어져 환율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 英 "올여름 통화정책 완화 필요"…유럽도 QE 제한 푸나
브렉시트의 진원지인 영국에서는 기준금리 인하, 추가 양적완화, 재정 기조 변화 등 가능한 카드가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조지 오즈번 영국 재무장관은 1일 기자회견을 열고 2020년까지 재정 흑자를 달성하기로 한 당초의 계획을 변경하겠다고 밝혔다.

오즈번 장관은 "국민투표 (결과)는 우리 경제에 현저히 부정적인 충격을 안길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우리의 일자리와 성장을 결정지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020년까지 재정 흑자를 달성하겠다는 목표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는 영국 정부가 재정 적자를 감수하면서라도 경기 둔화를 막는 데 나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도 조처를 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마크 카니 영란은행 총재는 지난달 30일 "올여름 일부 통화정책 완화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발언 이후 7∼8월 중에 기준금리 인하와 양적완화 확대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영란은행은 2009년 3월 이후로 줄곧 기준금리를 0.50%로 유지하고 있지만 이를 인하할 여지는 충분하다.

영란은행은 다음달 14일 통화정책회의를 앞두고 있다.

블룸버그가 43개 투자은행의 전망치를 집계해 가중평균 낸 수치에 따르면 올해 4분기 영국 기준금리 전망치는 기존보다 15bp(1bp=0.01%) 내린 0.35%다.

이 가운데 유럽 금융당국도 기존의 양적완화 정책 확대를 고려하고 있다.

ECB는 기존의 채권 매입 프로그램의 규모·대상을 늘리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브렉시트를 전후해 안전자산으로 돈이 몰리고 국채 금리가 마이너스로 내리면서 채권 매입 기준을 좀 더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채권 매입 대상을 확대하면 부채 규모가 큰 이탈리아가 수혜를 입을 전망이다.

현재 ECB는 매달 800억 유로 규모의 채권을 매입하고 있으며, 지난달부터 매입 대상에 비금융기업 회사채를 포함했다.

ECB의 다음달 회의 일정은 21일로 예정돼 있다.

◇ 中 지준율 인하 관측 '솔솔'…美 연준 금리인상에 또 걸림돌
중국과 미국 금융당국도 고민이 깊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1년 내내 금융시장 요동을 경험한 중국은 경제 경착륙을 막기 위해 추가 정책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지난달 차이신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마저 48.6으로 예상보다 낮게 나오면서 중국 경기 전망에 먹구름이 끼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인민은행(PBOC)이 지급준비율(RRR)이나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호주뉴질랜드은행(ANZ)은 브렉시트 여파로 인민은행이 지급준비율을 낮출 것으로 전망했으며, 중국국제금융공사(CICC)도 인민은행이 지급준비율을 수차례 인하하거나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외에도 스탠다드차타드와 코메르츠방크 등이 지급준비율 인하에 무게를 실었다.

현재 중국의 지급준비율은 17%, 기준금리인 대출금리는 4.35%다.

일본과 스위스, 덴마크 등은 당장 외환시장이 문제다.

일본 정부는 엔화 강세 현상을 더 두고 볼 수 없다며 개입 의지를 연거푸 드러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브렉시트 이후 연일 경제재정자문회의를 열고 외환시장 주시를 강조했다.

스위스 중앙은행도 지난달 24일 "브렉시트로 스위스프랑의 가치가 강한 상승 압력에 직면했다"며 외환시장에 개입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외에도 덴마크 중앙은행은 브렉시트 직후 50억 덴마크 크로네(약 8천600억 원)를 풀었다고 밝혔다.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 전망은 한층 불투명해졌다.

브렉시트에 따른 경기 방어가 필요한데다 달러 강세 심화로 미국 수출기업들이 채산성 악화에 직면한 것도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CME 그룹의 페드워치에 따르면 1일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은 7월 26∼27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을 97.6%로 점쳤다.

9월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은 5.9%, 올 연말까지 추가 인상 가능성도 23.4%에 그쳤다.

하지만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미국 대선 일정이 남아 있어 금리 인상은 한층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나아가 일각에서는 미국이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처럼 세계 주요국들이 무제한 돈 풀기에 다시 나설 채비를 하면서 환율전쟁이 격화하고 화폐 가치가 땅에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금융가의 대표적인 비관주의자인 '닥터 둠' 마크 파버는 "브렉시트는 영국과 일본, 미국이 돈을 더 찍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세계 모든 지폐는 중앙은행이 돈을 너무 많이 찍어냄으로써 가치가 없어지리라 예측하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heev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