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종법은 끓는 물에 밀가루를 넣어 '풀을 쑤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반죽해 만든 빵은 식감이 쫄깃하다. / 사진= 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
탕종법은 끓는 물에 밀가루를 넣어 '풀을 쑤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반죽해 만든 빵은 식감이 쫄깃하다. / 사진= 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
밥 대신 빵. 우리는 지금 '빵의 시대'를 살고 있다. 주변엔 빵에 대한 관심을 넘어 직접 빵집을 차리겠다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빵집은 도처에 널려 있지만 어떤 빵집을 어떻게 차려야 할 지 궁금한 게 많다. 셰프만의 개성으로 '골리앗'을 넘어뜨린 전국 방방곳곳 '작은 빵집' 사장님들의 성공 방정식. [노정동의 빵집이야기]에서 그 성공 법칙을 소개한다.

1999년의 일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제빵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김용식 빵나무 셰프(사진, 43)는 지인과 함께 우연히 맛본 빵에서 기존에 느껴보지 못한 식감을 경험했다. 쫄깃한 반면 빵에 뭉침이 없었다. 첨가제를 많이 넣었겠거니 했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밀가루가 발효되는 과정에서 수분을 충분히 머금은 맛이었다.

수소문 끝에 탕종법으로 만든 빵임을 알아냈다. 탕종은 끓는 물(80℃)에 밀가루를 조금씩 푸는 것을 뜻한다. 밀가루 반죽의 일종이다. 탕종은 빵을 만드는 기존 반죽법과는 정반대다. 빵은 기본적으로 밀가루를 놓고 찬물을 적당량 섞어 가며 반죽을 친다. 밀가루와 수분이 만나면 글루텐이 형성되면서 반죽을 용이하게 돕기 때문이다. 이후에 오븐에 굽는 과정에서도 훨씬 잘 부풀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글루텐이다.

반면 탕종처럼 펄펄 끓는 물에 밀가루를 넣으면 글루텐이 전부 상실된다. 반죽 대신 '풀을 쑤는' 과정으로 생각하면 탕종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게 김 셰프의 얘기다. 떡처럼 쫄깃하게는 만들 수 있지만 이를 빵으로 만들기는 어렵기 때문에 보통은 잘 쓰지 않는다. 글루텐이 소멸된 상황에서 이를 어떻게 빵 반죽으로 만들 것이냐가 관건이다.

왜 그는 탕종법을 쫓았을까.

"탕종법으로 만든 빵을 맛본 뒤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제빵을 시작했지만 그런 맛은 처음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특정 첨가제를 넣으면 빵을 얼마든지 쫄깃하게 만들 수 있지만 소화가 불편할 수 있거든요. 근데 탕종 반죽으로 만든 빵은 쫄깃하면서도 밀가루가 뭉치지 않았어요. 그때부터 탕종법을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죠."

하지만 탕종법을 배우기란 쉽지 않았다. 국내 제빵업계에서는 탕종반죽을 잘 쓰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전수해줄 만한 기술자가 없었다. 일본 기술자를 찾아냈다. 일본에서도 생산량을 이유로 잘 쓰지 않는 게 탕종법이란 얘기를 들었다. 그만큼 풀을 쑤는 방식으로 빵을 만들기란 쉽지 않아서다. 기본적인 원리를 배운 뒤로는 오로지 김 셰프만의 노하우를 찾아야했다.

"100% 탕종 반죽을 써서는 빵을 만들 수가 없어요. 밀가루를 끓는 물에 익혀버리면 반죽을 전혀 칠 수가 없기 때문에 빵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밀가루 1kg당 탕종 반죽을 사용하는 양에 따라 75%, 50%, 30%, 15% 이런 방식으로 구분하죠. 익은 반죽이 많이 들어가면 빵은 더 쫄깃해지지만 기술적으로 다양한 빵을 만들기는 더 어려워지죠."
김용식 빵나무 셰프(사진, 43)는 1999년 탕종법으로 만든 빵을 맛 본 뒤 15년 간 탕종 반죽을 연구했다. / 사진= 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
김용식 빵나무 셰프(사진, 43)는 1999년 탕종법으로 만든 빵을 맛 본 뒤 15년 간 탕종 반죽을 연구했다. / 사진= 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
빵나무의 베스트셀러 빵인 '생크림앙금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탕종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선 80~100℃ 사이의 물에 밀가루를 섞은 뒤 잘 젓는다. 비율은 물과 밀가루가 2:1이다. 반죽이 충분히 익으면 24시간 저온 숙성에 들어간다. 냉장 온도다. 저온 숙성을 하면 익은 반죽에 탄력이 생겨 치대기가 쉽다. 생크림앙금빵은 75% 탕종빵이므로 기본 반죽에 75%의 함량으로 탕종 반죽을 섞는다는 뜻이다. 동물성 생크림과 함께 팥을 넣으면 기본 구조가 완성된다.

김 셰프가 2012년 8월 홍대 인근에 빵나무를 열었을 때 바게뜨, 치아바타, 깜빠뉴를 앞세운 베이커리들이 득세했다. 자칫 '떡 반죽'으로도 오해할 수 있는 탕종법을 들고 과감히 빵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25년 차 제빵사 경력에서 온 감 때문이었다. 삼국시대 때부터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고 알려진 송편의 전통이 여전히 지켜지고 있는 것은 한국인들이 쫄깃하고 찰진 식감을 좋아하기 때문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소비자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빵을 들고 유행에 가장 민감하다는 홍대 인근에 베이커리를 내는 건 모험이었죠.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에서 건너온 빵들이 한창 소비자들에게 사랑받을 때였으니까요. '남들이 안 하는 걸 하자'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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