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지 않은 길' 주요국 통화스와프 등 컨틴전시 플랜 마련
7월 주요국 통화정책회의 주목…국제공조 없을 땐 환율전쟁 우려도

국제경제팀 = 영국 국민 다수가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하면서 당장 금융시장이 요동친 것은 물론 거시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증폭됨에 따라 각국 정부에 초비상이 걸렸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가 제대로 체력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현실로 다가온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는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현재로써는 그 영향을 가늠하기 어렵다.

당장 통화가치가 급변하고, 주식시장이 혼돈에 빠지면서 경제 심리에 악영향을 미치고 소비, 투자, 교역 등 글로벌 경제 전반의 위축이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이에 맞선 정책대응은 통화정책에서 먼저 나타날 공산이 크다.

각국은 7월에 예정된 통화정책회의에 앞서 비상회의를 열어 대응책을 논의할 가능성이 있다.

나아가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주요 20개국(G20) 차원의 공조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 '가보지 않은 길' 주요국 초비상…통화스와프 등 대책 마련 분주
주요국은 개표상황이 브렉시트로 굳어지자마자 긴박하게 움직이며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점검했다.

일본 정부는 곧바로 움직였다.

안전자산인 엔화의 가치가 폭등하면서 장중에 달러당 100엔선이 깨지는 상황을 맞아서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은 이날 "세계 경제, 금융·외환시장에 주는 리스크를 매우 우려하고 있다"면서 엔화 초강세에 대해 "필요한 때에는 확실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소 부총리는 "외환시장이 매우 신경질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런 움직임이 계속되지 않도록 외환시장 동향을 긴장감을 갖고 지금까지 해온 것 이상으로 주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도 성명을 내고 "일본은행은 국내외 관계기관과 협조를 긴밀히 하면서 (브렉시트가) 국제금융시장에 주는 영향을 주시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코스피와 코스닥시장이 폭락하고 원화가치가 급락한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이날 오후 2시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로 금융위 부위원장, 한국은행 부총재,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어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최 차관은 "가용 가능한 수단을 모두 동원해 외환·금융시장을 안정시키겠다"고 말했다.

또 외환·금융시장 변동성이 지나치게 확대될 경우 '컨틴전시 플랜'에 따라 필요한 시장안정 조치를 단호하게 추진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번 사태를 야기한 영국도 긴박하기는 마찬가지다.

영란은행은 이날 통화안정과 금융안정을 위해 필요한 모든 조처를 하겠다고 밝혔다.

마크 카니 영란은행(BOE) 총재는 이와 관련, 곧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영란은행은 성명을 통해 "광범위한 비상계획에 착수했다"며 "재무부와 국내 기관, 해외 중앙은행 등과 긴밀히 협력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영란은행은 브렉시트 발생 시 은행권에 추가 유동성 제공, 주요국 중앙은행들로부터 유동성 지원, 기타 정책 도구 사용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김위대 국제금융센터 유럽팀장은 "영란은행은 긴급유동성 공급, 기준금리 인하에 더해 회사채나 대형주 매입까지 양적 완화 확대를 확대하는 방안까지 고려할 것"이라며 "유럽중앙은행(ECB)과 스웨덴, 덴마크 등 비 유로화 사용국 간의 통화스와프도 논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브렉시트 충격에 따른 유동성 부족에 달러 가뭄이 심해질 경우 주요국 간에 통화스와프를 이용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구로다 총재는 "6개 중앙은행과 체결된 통화 스와프도 활용해가면서 유동성 공급에 만전을 기해 금융시장의 안정을 확보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2011년 유럽 재정위기 당시 미국과 일본, 캐나다, 유럽 중앙은행 등 간에 체결한 통화스와프 계약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 7월 주요국 통화정책회의 주목…국제공조 없을 땐 환율전쟁 우려도
각국은 시장 상황 악화가 지속할 경우 먼저 통화정책을 만지작거릴 공산이 크다.

수출에 역풍으로 작용하는 엔고의 가속화로 아베노믹스에 치명타를 맞은 일본의 움직임이 초미의 관심사다.

일본은행은 이달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시장의 일부 기대와 달리 브렉시트를 우려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에 향후 본격적인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가장 커서다.

이에 따라 다음 달 28∼29일 정례회의에서 추가 완화에 나설 것으로 금융시장에서는 예상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엔고에 속도가 붙을 경우 정례회의를 기다리지 않고 임시로 비상회의를 열 가능성도 점친다.

일본은행은 2009년 12월과 2010년 8월에 엔고 저지용 임시 비상회의를 연 전력이 있다.

일본은행에 앞서 미국의 연방준비제도가 7월 26~27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연다.

미국은 거의 10년 만에 처음으로 지난해 12월 금리를 올리면서 통화정책 정상화에 시동을 걸었으나 올해 들어서는 경제 상황이 부침을 거듭하고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가중되면서 금리 인상을 미뤄왔다.

최근에는 7월 또는 9월에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했으나 브렉시트 때문에 기준금리를 올리기가 어렵다는 전문가들의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시장에서는 오히려 0.25∼0.50%인 현행 금리를 다시 낮출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이번 사태의 진원지인 영국도 추가 완화에 나설 공산이 크다.

영국의 기준금리는 현재 0.5%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은 금리를 정상화하는 반면에, 유럽과 일본은 금리를 마이너스로 끌어내려 부양 강도를 높이던 정반대의 통화정책 방향이 다시 같은 길로 향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흐름은 다시 통화전쟁을 재점화할 가능성도 있다.

각국이 자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돈 풀기나 금리 인하에 나서면 통화가치 하락을 촉발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완화적 통화정책에 드라이브를 건 것도 엔저 유도를 통한 수출경쟁력 확보와 채산성 향상에 있었다.

이에 따라 각국이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G20 차원의 정책 공조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당장 오는 7월 22일∼24일 중국에서 G20 재무차관 회의에 이어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를 앞두고 각국이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주목된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경제연구실장은 "주요국은 결국 공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면서 "엔화가 문제인데, 일본은행을 비롯해 대부분 국가의 기준금리가 제로 금리에 가까워 여력이 많지 않은 가운데 통화 완화정책을 이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추가 금리인하보다는 추가경정 예상 편성에 힘을 실을 공산이 크다"고 덧붙였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각국에서 우려를 표명하고 학자들도 공동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면 브렉시트는 한 나라나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의 문제라는 인식이 있다"면서 "G7 등을 중심으로 정책 공조가 논의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금리 인상 논의가 당분간 잦아들고 유럽과 일본은 양적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서울=연합뉴스) heev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