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고객님. 그때 출국이시면 저희 매장에서는 구매가 불가능하세요."

23일 서울 송파구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7층에 있는 한 명품 매장.
내달 중순 신혼여행차 출국한다는 여성 고객이 가방 구매 가능 여부를 묻자 직원은 다른 롯데면세점 지점을 이용해달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통상 출국 날짜로부터 약 한 달 전까지 면세점 이용이 가능하지만,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의 경우 오는 26일 일반인 대상 영업이 종료됨에 따라 다음 달 9일 이전 출국자까지만 구매할 수 있다.

1989년 롯데월드 잠실점으로 출발해 2년 전 지금의 롯데월드몰(제2롯데월드)로 이전한 월드타워점은 모든 면세점 사업권을 5년마다 원점에서 재심사하도록 한 '5년 한시법'에 따라 지난해 11월 입찰에 참가했지만, 특허 재승인에 실패했다.

이에 따라 연매출 6천억 원, 국내 3위 규모를 자랑하는 월드타워점이 27년 만에 문을 닫게 된것.
영업종료를 사흘 앞둔 이날 면세점 7,8층 곳곳에는 영업종료를 알리는 안내 현수막과 함께, 선글라스와 시계, 화장품 등 유명 해외 브랜드를 할인 판매한다는 '생큐 세일'(Thank you Sale!) 행사 안내 문구가 내걸렸다.

가장 인기 있다는 화장품 코너 곳곳에는 진열대가 아예 텅 비어 있었고, 커다란 빈 박스를 들고 다니는 직원들도 눈에 띄었다.

전반적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이지만, 방문객 수는 평소와 별 차이가 없다는 게 롯데 측의 설명이다.

지난 21, 22일 양일간만 해도 하루 4천 명씩 다녀갔다.

이날 오전에도 면세점 7층 안내 데스크 인근에 마련된 고객용 의자에는 영업이 시작되자마자 몰려온 중국인 단체 관광객 100여명이 모여 있었다.

한국 관광만 벌써 네 번째라는 중국인 저우쩐(周珍·34)씨는 "사실 한국 관광을 오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면세점 쇼핑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라며 "롯데 잠실면세점은 월드타워로 옮기기 전부터 올 때마다 갔던 곳인데, 지금도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왜 문을 닫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했다.

월드타워점 관계자는 "재고가 소진된 품목도 있고 해서 일부러 여행사를 통한 고객 유치를 자제하고 있는데도 방문객 수는 평소와 크게 차이가 없다"며 "오히려 고객들이 '이렇게 잘되는데 왜 문을 닫느냐, 뭔가 밉보인 게 있는 것 아니냐'고 걱정할 정도"라고 말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관세청이 연말에 중소·중견면세점 1곳을 포함한 4곳의 면세점 신규 특허 추가 발급을 결정하면서 롯데 내부적으로는 기사회생의 기회를 잡은 분위기였다.

특허 4장 중 1장은 당연히 롯데 월드타워점이 획득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입점 로비 의혹에 검찰의 비자금 수사까지 악재가 겹치면서 이마저도 불투명해졌다.

관세청 심사 평가표상에는 ‘법규 준수’(80점) 항목도 있어서 검찰 수사가 특허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롯데면세점은 일단 연말 재개장을 가정해 월드타워점에서 근무하는 1천300여명에 대한 대책 마련에 나선 상황이다.

정직원 150여명은 타부서 전보 및 유급휴가 안에 따라 배치가 예정됐고, 용역직원 150여명은 시설유지를 위한 최소인원을 제외하고 타점 및 계열사에 흡수 배치할 계획이다.

브랜드 파견 판촉 직원 1천여명 가운데 90%는 타점 및 타사 이동 근무가 완료됐다.

월드타워점 공간 일부는 중소기업 제품이나 토산품 홍보관 등 상생을 위한 목적으로 활용하고, 인터넷면세점 물품을 구매할 수 있는 키오스크(단말기)를 설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이런 조치에도 현장 직원들이 체감하는 불안감은 훨씬 더 크다.

한 매장 직원은 "잠실점에 있을 때부터 근무했는데, 단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엔 이렇게 잘되는 면세점이 문을 닫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며 "그나마 연말에 다시 특허를 따면 되겠거니 했는데, 이젠 정말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직원도 "억지로 미소 짓고 고객을 대해야 하는 우리 심정을 누가 알겠느냐"며 울상을 지었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입점해 있는 3대 명품 브랜드(샤넬, 에르메스, 루이뷔통)을 비롯해 상당 수 업체들이 대부분 매장을 철수하지 않고 재개장 때까지 유지한다는 입장"이라며 "그만큼 타 면세점에 비해 월드타워점이 여러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월드타워점이 매출이나 방문객 규모 면에서도 경쟁력이 있는 만큼 신규 특허 취득 준비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정빛나 기자 shi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