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 성장기 대규모 프로젝트에 자금을 몰아주는 역할을 한 국책은행이 기업 구조조정을 맡으면서 오히려 선제적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못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효율적인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시중은행의 기업분석 능력 향상과 사모펀드(PEF) 시장 활성화 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양원근 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15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한국경제학회와 금융연구원이 주최한 ‘바람직한 기업 구조조정 지원 체계 모색’ 토론회에서 이 같이 밝혔다.

양 전 연구위원은 은행의 산업·기업에 대한 분석·연구 기능이 취약한 데다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에 의사결정 기능이 집중된 것을 현재 기업 구조조정 시장의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또 구제금융(bail-out)에 대한 기대도 기업 구조조정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양 전 연구위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의 수익성이 빠르게 감소했지만 저금리가 이어지면서 기업의 금융비용 역시 감소했다”며 “이 때문에 위험 정도에 따름 금리 차별화가 이뤄지지 않았고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유인 자체가 줄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 고도 성장기에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의 역할은 국내 자금을 대형 프로젝트에 집중적으로 몰아주는 것”이라면서 “저성장기의 선제적인 구조조정 수요와는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자본시장의 취약한 구조조정 시스템도 지적됐다. 그는 “대주주인 경영자의 경영권 집착이 부실이 드러나기 전에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사업을 재편할 기회를 빼앗고 있다”며 “PEF 시장을 활성화하고 부실 기업 투자 전문 펀드를 조성해 자본시장의 기업 구조조정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 공시의 투명성을 높이고 은행권 역할을 개선해 기업 구조조정 체계를 상시·선제적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양 전 연구위원은 “구조조정 시기를 놓치면 경영자의 재기가 어려운 구조를 형성해 대마불사(大馬不死;큰 기업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 불가 원칙을 세워야 한다”며 “은행은 기업 분석 전문가를 양성하고 리서치 부문을 키워 국책은행에 기업 구조조정 기능이 집중되는 구조를 깨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