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없는 대우, 국책은행 등에 업고 무리한 수주경쟁
산은, 위기 때마다 '소방수'…최대주주로 부실 경영 방치


최근 검찰이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와 경영비리 의혹에 칼날을 들이대고 있지만, 국내 굴지의 조선사에 문제가 있다는 징후는 몇 년 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대우조선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자회사로, 사실상 주인이 없는 탓에 누구도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았다.

위기 때마다 소방수 역할을 한 산은에 의존하면서 홀로 설 능력을 키우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산은은 대우조선의 최대주주로 있으면서도 분식회계를 묵인 또는 공모했다는 의혹 때문에 수사 대상에 함께 올랐다.

대우조선 초창기부터 40년 가까이 이어진 두 회사의 질긴 인연이 주목받는 이유다.

12일 업계 등에 따르면 검찰은 대우조선이 회사 부실을 은폐하기 위해 수년간 수조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저지른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

앞서 검찰은 이를 입증할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지난 8일 대우조선과 산은을 압수수색했다.

대우조선은 해양플랜트 사업에서 발생한 손실을 미래에 받을 공사대금 계정인 '미청구공사'로 분류하는 수법 등으로 손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의혹을 받고 있다.

대우조선이 숨기려 한 해양플랜트 손실의 원인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회사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수주가 끊기자 해양플랜트로 눈을 돌렸다.

어찌보면 이 때가 경영 합리화 등 체질 개선을 할 기회였지만, 그동안 수주한 일감이 쌓여 있는 덕분에 걱정 없이 새로운 사업에 도전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빠른 성장을 거듭했던 대우조선은 외연 확장을 위해 국내 조선사와 치열한 수주 경쟁을 벌였고, 훗날 대규모 적자의 주범이 된 저가 수주가 이어졌다.

업계에서는 국책은행을 등에 업은 대우조선이 단기 실적에 집착하면서 저가 경쟁을 주도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여파는 오래가지 않아 실적에도 반영됐다.

대우조선은 2011~2012년 연간 14조원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2011년 1조1천억원에서 2012년 4천860억원으로 반 토막 났다.

대우조선은 2013년과 2014년 각각 4천409억원, 4천711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지난 4월 정정 공시를 통해 7천731억원, 7천377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고 뒤늦게 밝혔다.

대우조선은 지난해 6월 정성립 신임 사장이 취임한 이후에야 해양플랜트에서 손실이 난 사실을 인정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전임 고재호 사장이 연임을 위해 '장밋빛' 재무제표를 작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16년간 최대주주였던 산은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나왔다.

산은 고위직 출신들이 최근 몇 년간 대우조선의 최고재무책임자와 사외이사 등 요직을 차지했지만, 고액 연봉만 누렸을 뿐 부실 경영을 제어하지 못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이 "대우조선에 2004년부터 특별한 실적도 없이 거액의 연봉과 돈을 받은 자문역이 60명에 이른다"고 지적했고 이들 다수는 산은 출신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두 회사의 관계는 최근 대우조선과의 결탁 논란이 불거지기 한참 전부터 시작됐다.

산은은 1978년 대우조선 창립 초기에 지분의 40% 이상을 출자했고 이후 만성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대우조선이 1989년 8월 산업합리화업체로 지정됐을 때도 소매를 걷고 나섰다.

대우가 부동산 매각과 증자 등 4천억원의 자구노력을 하는 조건으로 산은이 대출금 상환을 유예하고 신규 자금을 지원한 것이다.

대우조선은 산은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났고 이후 1994년 산업합리화 조치에 따라 대우중공업에 합병됐지만, 안정된 시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무리한 사업확장을 추진해온 대우그룹이 IMF 경제위기 직후 유동성 위기를 맞으면서 1999년 8월 대우중공업을 포함한 12개 계열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이후 채권단은 2000년 10월 대우중공업을 대우조선공업과 대우종합기계로 나눠 출범하고 출자전환을 단행했는데, 출자전환도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주도했다.

당시 산업은행은 자산관리공사와 함께 1조1천714억원을 출자전환해 대우조선의 지분 41%를 확보하면서 최대주주가 됐다.

산은은 대우조선 지분을 팔아 공적자금을 회수하려고 했지만, 2008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한화가 금융위기 여파로 매각대금을 내지 못하는 등 매각 시도가 번번이 무산됐다.

대우조선은 최근 5조3천억원 규모의 자구계획을 승인받았다.

그러나 조선 경기가 단기간에 개선되기 어려워 보이는 상황에서 대우조선과 산은은 앞으로도 당분간 같은 배를 탈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김동현 기자 blueke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