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리인상·브렉시트 투표·일본 통화정책회의 '촉각'
기준금리 동결해도 '인하' 주장 소수의견 나올 가능성

지난주 기자를 만난 한국은행의 한 신임 금융통화위원은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진 채 심각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복잡해진 대내외 여건 때문에 고민이 많으시겠다"고 묻자 이 위원은 "지금은 금통위 회의를 앞둔 묵언 기간이라 아무 말도 할 수 없다"고만 답했다.

오는 9일 금통위를 열어 기준금리를 결정해야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들의 고민이 깊어졌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데 고려해야 할 대내외 경제변수들이 복잡하게 꼬인 탓에 이러기도 저러기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평소 자신이 매파(물가안정 중시)도, 비둘기파(경제성장 중시)도 아니며 중립적으로 지표에 의거해(데이터 디펜던트) 금리를 결정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바로 그 지표외 대외여건이 이 총재를 비롯한 한은 금통위원들의 결정을 어느 때보다 어렵게 만들고 있다.

◇ 국내경기 부진에 구조조정까지…추가인하 필요한 시기
국내 경제지표는 일시 호전되는 듯한 기미를 보이다 다시 악화되는 양상이다.

수출만 감소세가 둔화됐을 뿐 생산과 투자, 소비 등이 모두 얼어붙은 형국이다.

지난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보다 0.5% 늘어나는데 그쳤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의 충격을 받았던 작년 2분기(0.4%) 이후 최저 수준이다.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7.1%나 줄어 2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국내총투자율(27.4%)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년 2분기 이후 최저로 떨어졌다.

향후 경기에 대한 불안감에 사로잡힌 가계는 소비를 하지 않고 저축만 늘려 총저축률(36.2%)이 1년 만에 최고치로 올랐다.

지난달 수출 감소율이 6%로 전월대비 떨어졌지만, 그동안 누적된 수출 부진의 여파로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2년 3개월 만에 가장 작은 수준으로 급감했다.

더구나 이런 경기 부진의 상황에서 앞으로 구조조정의 타격까지 발생한다면 대량실업으로 인한 경기 위축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대량실업은 가계의 소비위축으로 이어지고 기업의 생산 및 투자도 더욱 얼어붙게 할 공산이 큰데다 자칫 금융시장에도 충격을 줄 수 있다.

이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한은이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함으로써 시중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하고 경기의 추가 위축에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시장에 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국내 주식시장의 애널리스트들이나 해외 IB(투자은행)들이 한은이 올해 안에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할 것이라고 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 어려워진 美 인상에 브렉시트 투표…복잡해진 대외변수
하지만 기준금리 추가 인하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변수들도 만만찮다.

올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 가능성은 한은의 추가 인하를 어렵게 하는 최대 복병이다.

지난 4월 연준의 의사록 공개로 6월 추가 인상이 확실시됐지만, 5월 비농업부문 고용이 예상외로 부진한 것으로 드러나자 6월 인상 전망은 물 건너간 분위기다.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5월 비농업부문 고용은 3만8천명(계절조정치) 늘어나는데 그쳐 2010년 9월 이후 최저 수준에 머물렀다.

국제금융시장은 오는 14∼15일 열리는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준이 금리를 올리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면서 6일(현지시간)로 예정된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의 연설에서 인상에 관한 시그널(신호)이 나올지 주목하고 있다.

옐런 의장이 고용 부진에도 금리 인상을 암시하는 발언을 내놓는다면 시장의 분위기는 다시 6월 인상 쪽으로 기울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국 금리 인상 전망이 오락가락하면서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여부를 전망하기도 한층 어려워졌다.

최근까지는 미 연준이 6월에 금리를 인상하고 금융시장에 별다른 충격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한은이 7월께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가장 설득력이 높은 것으로 꼽혔다.

내외금리차 축소로 인한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 우려 때문에 미국 인상 전에 한은이 먼저 금리를 내리긴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용부진으로 미국의 인상 예상 시기가 늦춰지면서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예상 시점도 미뤄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6월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여부를 결정할 투표가 23일에 실시될 예정이고 이에 앞서 15∼16일엔 일본은행의 통화정책회의도 예정돼 있는 등 국제금융시장이 숨죽여 결과를 지켜볼 대형 이벤트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한은이 섣불리 움직이기가 어려운 여건인 셈이다.

◇ 금통위 가능성 큰 시나리오는 '동결에 소수의견'
소수이긴 하지만 미국의 인상 시기가 미뤄진 것을 이용해 한은이 먼저 내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긴 하다.

지난달 기준금리가 만장일치로 동결됐지만 '이른 시일 내에 기준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는 점도 인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금리를 내린 후 미국의 인상으로 국내외 금융시장에 충격이 발생하고 해외투자자금이 빠져나가기 시작한다면 한은이 이에 대응할 수단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는 아니다.

결국 현재로선 오는 9일 금통위에서 한은이 기준금리를 동결한 뒤 국제금융시장의 움직임을 지켜볼 것이라는 전망이 가장 유력하다.

대신 이달엔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을 실명으로 밝히는 소수의견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이런 소수의견 표출은 앞으로 국내외 여건과 지표, 금융시장 동향 등을 봐가며 1∼2개월 뒤 인하를 검토해볼 수 있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반기엔 국제 금융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는 변수들이 산적해 있고 국내에서도 구조조정의 충격이 예상되므로 한은이 이처럼 추가 인하의 여지를 열어두고 돌발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한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는 "한은이 연내에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 시기가 언제일지가 핵심"이라면서 "금통위는 인하의 효과가 극대화될 시점을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기자 hoon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