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급 자살보험금 80%가 소멸시효 2년 지나…생보사들 '압박'
보험업계 당혹…"무작정 보험금 지급했다간 배임 논란 휘말려"


금융감독원이 소멸시효 2년이 지났더라도 자살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생명보험사들에 경고했다.

보험사들은 자살에 일반사망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지, 보험금이 2∼3배 많은 재해사망 보험금이 적용되는지를 놓고 보험 수익자들과 소송을 벌여왔다.

이로 인해 2천억원대의 보험금 지급이 계속해서 늦춰지자 금감원이 "약속한 보험금을 반드시 지급해야 한다"며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23일 발표한 '자살보험금 지급 관련 금감원의 입장 및 향후 처리 계획'을 통해 "보험사들이 보험 청구권 소멸시효(2년)와 관계없이 자살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자살보험금 논란은 2014년부터 이어져 왔다.

생명보험사들은 2001년부터 2010년까지 10여간 판매한 재해사망 특별계약 상품 약관에 '가입 2년 후에는 자살 시에도 특약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명시했다가 뒤늦게 문제가 되자 약관 작성 때 실수가 있었고, 자살은 재해가 아니라며 특약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면서다.

금감원이 ING생명 등을 제재하면서 약관에 명시된 대로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했지만, 생보사들이 반발하면서 소송 전(戰)으로 비화했다.

자살에도 특약 보험금을 줘야하는 계약만 280만건에 달한다.

진통 끝에 지난 12일 대법원은 생보사들이 약관에 기재된 대로 자살에도 재해사망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청구권 소멸시효가 지난 보험 계약에도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지를 두고 논란은 여전히 남았다.

보험사들은 자살 특약보험 수익자가 보험금을 청구할 경우 일반사망 보험금만 지급해왔다.

이런 식으로 ING생명·삼성생명 등 14개 보험사가 덜 지급한 자살 보험금은 지난 2월 말 기준으로 2천465억원(지연이자 포함)이다.

이 중 청구권 소멸시효 2년이 지난 보험금이 78%(2천3억원)에 이른다.

보험사별로는 ING생명(815억원), 삼성생명(607억원), 교보생명(265억원), 알리안츠생명(137억원) 순서로 미지급 보험금이 많다.

보험사들은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은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보험 계약자들은 재해사망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2년이 지나도록 신청하지 못한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소멸시효와 관련해 보험금을 타야하는 이들이 제기한 민사 소송만 8건 진행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19일 보험금 청구 시효가 지난 계약은 자살보험금을 줄 필요가 없다고 판결하면서 혼란이 커졌다.

권순찬 금감원 부원장보는 "보험사의 귀책으로 특약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멸시효가 지났더라도) 추가 지급을 해야 한다"면서 "소멸시효에 대한 민사적 판단을 이유로 자살보험금 지급을 더는 미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보험회사들은 지급을 미룬 자살보험금에 대해서는 약관에 명시된 이자율(10% 내외)로 지연이자를 따로 줘야 하는데, 이 금액만 578억원에 이른다.

권 부원장보는 "대법원에서 소멸시효가 지난 보험금은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을 내더라도 보험사가 애초 약속한 보험금을 모두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면서 "보험사들이 소비자와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자살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거나 지연한 회사와 임직원을 제재하고, 각 회사에서 보험금을 어떻게 지급할지 계획을 받기로 했다.

지급률이 저조한 회사는 현장 조사할 계획이다.

또 보험사의 귀책으로 보험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 경우 소멸시효 대상에서 제외되도록 관련법 개정을 건의하기로 했다.

보험사들은 금감원의 권고에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이다.

한 생명보험사 관계자는 "(소멸시효와 관련한) 대법원 판결이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결정한 것은 성급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상장사의 경우 무작정 보험금을 지급했다가는 배임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cho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