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선주들과 용선료 인하 협상을 마친 현대상선 측 대표단인 마크 워커 미국 밀스타인 법률사무소 변호사(오른쪽)와 김충현 현대상선 재무담당 상무가 18일 협상장인 서울 연지동 현대사옥을 나가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외국 선주들과 용선료 인하 협상을 마친 현대상선 측 대표단인 마크 워커 미국 밀스타인 법률사무소 변호사(오른쪽)와 김충현 현대상선 재무담당 상무가 18일 협상장인 서울 연지동 현대사옥을 나가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할 수 있는 얘기가 없다.” 현대상선 용선료 인하 협상 대표를 맡고 있는 마크 워커 미국 밀스타인법률사무소 변호사는 18일 서울 율곡로 현대상선 본사에서 그리스의 다나오스 등 외국 선주 네 곳과 4시간 여에 걸친 협상을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워커 변호사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 정부를 자문하며 단기외채 상환 유예를 이끌어낸 인물이다. 워커 변호사와 함께 협상에 나선 김충현 현대상선 재무담당 상무(CFO)도 “협상이 마무리된 것이 아니어서 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

협상 분위기는 어두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상선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협상이 끝난 뒤 보도자료에서 “선주사들과 용선료 인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며 “산업은행은 선주사들과 용선료 협상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만 추가 논의에 나설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선주사와의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으면 더 이상 협상 없이 현대상선을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도록 하겠다는 의미라고 관계자는 전했다.
외국 선주들 불러모았지만…산은 "현대상선 용선료 합의 못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외국 선주들이 곧 돌아가 본사와 협의한 뒤 다음주까지 현대상선과의 협상을 이어갈 것”이라면서도 “전반적인 상황은 만만치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협상장에 나온 외국 선주 협상단은 현대상선에 가장 많은 13척의 선박을 빌려준 다나오스를 비롯해 그리스 나비오스·CCC와 싱가포르 EPS(콘퍼런스콜로 참여) 등 네 곳이다. 영국 조디악은 별도로 협상하겠다며 방한하지 않았다. 이들 다섯 곳은 현대상선이 부담하는 용선료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컨테이너 선주들이다.

외국 선주들이 방한한 이유는 현대상선 용선료를 깎아줬을 때 경영정상화가 가능한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채권단 관계자는 “외국 선주들은 현대상선 경영이 정상 궤도에 오를 것이라는 말을 현대상선이 아니라 정부로부터 직접 듣길 원했다”고 전했다.

협상에 나선 정용석 산업은행 부행장은 외국 선주들에 용선료 인하 때 채권단의 지원 계획과 의지를 밝혔다. 선주사들이 용선료를 28.4%(3년6개월간 7200억원)가량 깎아주면 현대상선이 법정관리를 피할 수 있도록 채권단도 지원할 것이라는 의사를 거듭 설명했다.

현대상선 법정관리로 대부분의 용선 계약이 해지되면서 선주들이 한 푼도 못 건지는 상황에 처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것이다. 국내 벌크선사 1위인 팬오션과 대한해운이 과거 법정관리 절차를 밟으면서 외국 용선계약이 무효화된 사례도 제시해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은 또 현대상선 부채비율이 200% 수준으로 낮아지면 정부의 선박건조 프로그램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선주사들에 알렸다. 워커 변호사는 용선료 인하분의 절반을 현대상선 주식으로 출자전환해 주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용선료 인하 목표 규모는 7200억원 수준으로 이 가운데 3600억원어치를 주식으로 보상하겠다는 것이다. 나머지 절반은 앞으로 분할상환하겠다는 카드도 내밀었다. 현대상선 측은 오는 31일과 다음달 1일로 예정된 사채권자 집회를 통해 공모사채 4000억원어치도 출자전환한다는 계획을 선주사들에 설명했다.

외국 선주들은 깎아준 용선료 일부를 현대상선 주식으로 받게 되면 이를 팔아 현금으로 회수하는 방안에 대한 질의를 많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출자전환을 하게 되면 의무보호예수 규정에 따라 주식 인수자는 상장일로부터 6개월간 주식을 보유해야 한다. 외국 선주들은 용선료 인하분 일부를 분할상환하겠다는 계획과 관련해 현대상선이 유동성 부족으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될 경우에 대비해 채권단이 구속력 있는 방안을 제시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안대규/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