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효과 없고 엔고 '역풍'…수익률 좇아 해외채권투자 15배 폭증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도입한 지 100일을 앞둔 일본에서 그 효과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4일 일본 언론들은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도입하면서 침체된 소비를 자극하는 것은 물론 엔화가치 하락도 노렸는데, 효과는 엇갈리게 나타나고 있다고 소개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경기가 상승하는 효과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총평했다.

일본은행은 시중은행이 국채 여유자금을 일은에 맡기면 예전에는 전액 이자를 주었으나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뒤로는 일부에 오히려 수수료를 물렸다.

남아도는 돈을 가계나 기업에 빌려줘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조치였다.

명확하게 밝히진 않았지만, 일본은행은 엔화가치 하락도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이대로 되면 수입품의 엔환산 가격을 올려 디플레이션 탈출 효과가 생기고, 자동차 등 수출기업의 실적도 개선될 수 있어서다.

하지만 그 결과는 거꾸로였다.

급격한 엔고가 나타난 것이다.

예대마진이 주요 수익원인 시중은행들은 안정적인 수익 확보가 어려워졌고, 보험회사는 돈을 굴릴 곳이 줄었다.

역설적으로 경제의 혈관인 금융기관들이 힘들어진 것이다.

개인 소비심리도 오히려 얼어붙었다.

일본경제가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해야 할 정도로 나쁜 것이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킨 결과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주택대출 금리나 대출 기준금리가 내려가 금리 면에서 정책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향후 실물경제나 물가 면에서도 효과가 파급한다"는 시나리오를 상정했지만, 뜻밖의 현상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생활에는 긍정과 부정적 영향이 교차하고 있다.

개인으로선 집이나 차를 살 때 돈을 빌리면 금리 부담이 줄었다.

기업도 자금 조달금리가 내렸기 때문에 "마이너스금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기업이 평가하지 않는 기업의 3배"라고 산케이신문이 전했다.

그러나 금리나 채권운용 소득으로 생활비 일부를 충당하던 자산가나 은퇴 후 연금생활자는 타격이 크다.

이에 따라 위험을 무릅쓰고 해외 채권투자로 시선을 돌리는 움직임이 강해졌다.

일본 재무성 통계에 따르면 일본인의 3월 중장기 해외채권의 순매수 금액은 5조2천억엔(약 56조1천140억원)으로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1개월 사이에 무려 15배로 폭증했다고 닛케이가 전했다.

주택대출을 보면 5대 메가뱅크의 경우 3월 신규신청 건수는 4만건으로 전년 동월 대비 20% 정도 느는데 그쳤다.

다만 보다 낮은 금리의 대출로 갈아탄 건수는 상당히 늘어났지만, 경기가 좋지 않아 금리를 낮춰도 집을 새로 사려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다.

기업상대 융자도 제자리걸음 양상이다.

시중은행들은 마이너스 금리정책 도입 뒤에도 중소기업들이 많이 쓰는 기간 1년 미만 단기프라임금리는 연 1.475%로 유지하고 있다.

은행이 수익 축소를 싫어해 중소기업의 의욕을 꺾는 셈이다.

닛케이는 "마이너스 금리에만 의지하지 말고 정부·일본은행이 하나가 돼 규제완화나 구조개혁을 포함한 종합적인 경제정책 운영을 하지 않으면 구로다 총재가 주장하는 실물경제나 물가 면의 긍정적 파급 시나리오는 실현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춘규 기자 tae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