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샐러리맨(회사원)은 영웅이었다. 끈기와 열정으로 패전 후 잿더미 속에서 일본 경제를 일으켜 세웠고 평생 직장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지금 일본 샐러리맨은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도전정신과 활력을 잃은 채 경직된 조직문화, 불필요한 야근, 지나친 밥그릇 지키기 등 단점이 크게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3일 “영웅이었던 일본 샐러리맨이 이젠 경제 개혁을 가로막는 골칫거리로 취급받고 있다”며 이를 ‘샐러리맨의 저주’라고 표현했다.

샐러리맨의 위상이 추락한 것은 시대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탓이다. 나카노 고이치 소피아대 교수는 “창의성과 도전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지만 일본 샐러리맨은 완전히 반대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기보다 집단적 사고에 편승하기 일쑤고, 책임을 지기 싫어 조금이라도 모험적인 일은 꺼린다는 설명이다.

평생 직장에서 연공서열에 따라 승진하고, 호봉과 함께 월급이 오르는 체계로 샐러리맨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진단이다. 시마다 하루오 주오대 경영대학장은 “40여년 전만 해도 일본의 생산성은 세계 최고였지만 지금은 매우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일을 열심히 안 해도 연봉이 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해 아베노믹스의 일환으로 ‘성과 기반 보상’을 도입하려 했지만 샐러리맨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일본 대기업의 평생 고용 보장은 1990년대 거품 붕괴 후 경기 침체기에 많은 샐러리맨에게 위안이 됐지만 이후 젊은 세대는 비정규직으로 몰리며 오히려 일본의 경기 회복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을 듣는다.

FT는 “도시바의 분식회계, 미쓰비시자동차의 연비 조작 등 최근 잇따른 기업 스캔들도 샐러리맨 문화의 한계를 노출시킨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전체 사회와 고객보다 조직을 중시하는 왜곡된 충성심에서 비롯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