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만나 경제활성화법안의 19대 국회 회기 내 통과를 당부하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만나 경제활성화법안의 19대 국회 회기 내 통과를 당부하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형 양적 완화’를 둘러싼 정부와 야당의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29일 “양적 완화는 물가 상승을 유발해 국민에게 부담을 지우는 일”이라고 비판하자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에 질세라 “물가나 가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반박했다. 안 대표는 양적 완화에 앞서 추가경정예산 편성이나 공적 자금 투입을 검토할 것을 요구했지만 유 부총리는 “(경제 상황이) 추경 요건이 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포문은 안 대표가 먼저 열었다. 안 대표는 이날 국민의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구조조정에 쓰기 위해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낸다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며 “추경을 편성하건 공적 자금 투입을 준비하건 동원 가능한 다양한 수단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기업 구조조정을 원활히 추진하기 위해 한은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에 출자해 자본을 확충하는 한국형 양적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

안 대표는 이어 “한은이 돈을 찍어내면 당장 정부 재정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여 성적표가 좋게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 전 국민에게 골고루 부담을 지우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한국형 양적 완화가 정부 재정 대신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하는 ‘편법’이며, 통화량 증가로 물가 상승 등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안 대표는 또 “양적 완화는 경제 상황이 심각하고 전통적 통화정책이 효과가 없을 때 고려하는 방법”이라며 “양적 완화를 할 정도라면 정부가 지금까지의 정책이 실패했다는 점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 부총리는 즉각 반박했다. 유 부총리는 국회에서 국민의당 원내지도부와 면담한 뒤 기자들과 만나 “한국형 양적 완화는 특정 분야에 한정해 돈을 투입하는 것으로 미국 등 선진국 중앙은행이 했던 양적 완화와 다르다”며 “물가나 가계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말했다. 분야를 정하지 않고 돈을 풀어 경제 전반에 광범위하고 무차별적인 영향을 미치는 본래 의미의 양적 완화와는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유 부총리는 양적 완화 대신 추경이나 공적 자금을 편성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그는 “추경은 경기가 특별히 나빠져 대량 실업이 발생하는 등 일정한 요건을 갖췄을 때 편성할 수 있다”며 “구조조정 과정에서 경기가 악화할 순 있지만 그것 때문에 경기가 대폭 침체할 것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국가재정법상 추경 편성 요건은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 대량 실업 등으로 제한돼 있는 점을 설명한 것이다. 공적 자금에 대해서도 “국민 세금을 바로 투입하지 않을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유 부총리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원내지도부와 만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노동개혁 4법, 자본시장법 등 19대 국회 마지막까지 남은 쟁점법안 통과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이견을 좁히지는 못했다. 유 부총리는 이종걸 더민주 원내대표와의 면담 뒤 기자들에게 “서비스산업법과 파견근로자법을 비롯한 노동개혁 4법을 함께 통과시켜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노동 4법이 통과되면 청년 일자리가 생긴다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라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자본시장법에 대해서는 처리 가능성을 시사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