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책임론' 엇갈린 시선…"최선 다한 구원투수" vs "결자해지"
국내 최대 해운사인 한진해운의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 신청과 관련,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경영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논란이 일고 있다. 조 회장은 제수(弟嫂)인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유수홀딩스 회장)으로부터 2014년 4월 유동성 위기에 봉착한 한진해운 경영권을 넘겨받아 2년간 이끌었다.

조 회장은 한진해운 보유지분이 없지만, 대한항공을 통해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조 회장이 부실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사재출연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한진그룹 측은 “조 회장이 어려움에 처한 회사를 넘겨받아 회생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경영책임을 얘기하는 것은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금융당국과 산업은행은 “조 회장 사재출연이 한진해운의 자율협약을 개시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아니다”면서도 여론 눈치를 살피고 있다.

○부실 책임 누구에게 있나

한진해운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서서히 경영상황이 나빠졌다. 당시 고유가로 비용이 급증했지만 세계 해운경기가 악화하면서 운임은 계속 곤두박질쳤다. 지난해 말 기준 한진해운의 부채비율은 847%다.
'조양호 책임론' 엇갈린 시선…"최선 다한 구원투수" vs "결자해지"
급기야 지난 25일 서류를 보완하라는 지시를 받긴 했지만 채권단에 자율협약 신청서를 냈다. 자체적으로는 부실을 처리하기 힘드니 채권단이 지원해달라는 것이다. 자율협약이 받아들여지면 용선료(선박 임차료) 인하 등이 계획대로 이뤄진다는 조건 아래 한진해운은 5조6000억원 규모의 채무 가운데 일부를 감면받는다.

대주주 책임 논란이 불거지는 건 이 대목에서다. 경영부실로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대출 감면 등 세금 지원을 받을 상황에 처했으니 한진그룹을 이끄는 조 회장도 사재출연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형평성 문제도 거론된다.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현대상선은 자율협약을 신청하기 직전 대주주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300억원의 사재를 출연했다.

한진그룹과 한진해운은 “사재출연 요구는 과도하다”고 밝히고 있다. 우선 한진해운의 부실은 조 회장 책임이 아니라는 게 한진 측 주장이다. 한진해운의 경영난이 심각해진 건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부터이고, 당시 책임자는 최은영 전 회장이라는 것이다. 또 조 회장은 한진해운 경영권을 넘겨받은 뒤 대한항공을 통해 지금까지 1조2000억원의 자금을 한진해운에 투입하는 등 회사를 회생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고 한진 측은 밝혔다. 조 회장은 ‘구원투수’로 등판한 것뿐이며, 지금의 상황은 조 회장으로서도 ‘불가항력’이었다는 설명이다.

○여론이 부담스러운 정부

일반 국민의 정서는 우호적이지 않다.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으로 한진그룹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많은 상황에서 한진해운이 자율협약을 신청하기 직전 최 전 회장이 회사 지분을 매각한 사실이 드러나 비판을 받고 있다.

과거 조 회장이 한진그룹에서 한진해운이 계열분리되는 것을 사실상 막았다는 점을 들어 ‘경영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최 전 회장은 2010년 한진해운 독자경영을 위해 한진그룹에서 계열분리를 추진했으나 한진그룹 측에서 유보적인 반응을 보였다. 재계에선 “조 회장이 종합물류그룹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진해운 계열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얘기가 많았다.

금융당국과 산업은행은 사재출연 논란에서 한발짝 물러나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엄밀히 따지면 한진해운 부실책임은 조 회장이 아니라 최 전 회장에게 있는 것 아니냐”며 “현정은 회장과 조 회장의 경우는 다르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주식회사법은 대주주를 포함한 모든 주주가 보유지분만큼만 책임지도록 규정돼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이번 논란은 ‘국민정서법’에 좌우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대기업 총수에게 법 테두리를 넘어선 경영책임을 물었던 선례(先例)가 많아서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1999년 자동차산업을 포기할 당시 2조8000억원의 사재를 출연했으며,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도 지난해 채권단으로부터 자금지원 조건으로 사재출연을 요구받았다.

이태명/안대규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