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연봉에 CEO급 대우…금융권 감사에 꽂힌 '정피아'
“매년 수억원의 보수와 은행장급 대우를 받는데 크게 책임질 일은 없으니 누가 탐내지 않겠습니까. 기존 상임감사위원(이하 감사) 임기가 1년 가까이 남았는데 벌써 여기저기서 청탁이 쏟아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

금융회사들이 감사 선임을 놓고 홍역을 치르고 있다. 4·13 총선을 전후해 ‘정피아(정치인+마피아)’의 집중 공략 대상이 되고 있어서다.

▶본지 4월20일자 A14면 참조

국민은행이 대표적이다. 1년4개월 동안 공석이던 국민은행 감사에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금융 문외한을 감사로 선임하려는 낙하산 인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세게 반발했다. 야당까지 가세하면서 논란이 증폭되자 KB금융지주는 내정을 철회하고 새로운 감사를 찾기로 했다.

KB금융 100% 자회사인 KB부동산신탁 감사에도 국무총리실 국장급 인사가 유력하게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1일에는 신용보증기금 감사에 김기석 전 새누리당 국민통합위원회 기획본부장이 선임됐다.

금융권에서는 강화된 공직자윤리법으로 금융회사 감사의 ‘단골’이던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 출신의 진출이 어려워지자 이 자리를 정피아들이 꿰차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대형 손해보험회사 사장은 “금융 관련 지식과 경험을 갖춰야 하는 사외이사와 달리 감사는 결격 요건만 있을 뿐 전문성 요건이 없어 정치권 출신 인사들이 가장 원하는 ‘꽃보직’으로 통한다”며 “감사에 선임되면 5~6년씩 눌러앉는 경우가 많은데도 막을 방도가 없다”고 했다.

감사의 본래 역할은 경영진이 내부 통제를 적절하게 하는지 견제하는 것이다. 상법에 따라 자산 2조원 이상 상장기업은 이사회에 사외이사가 3분의 2 이상인 감사위원회를 의무적으로 둬야 한다. 자산 2조원 미만은 감사위원회 대신 상근감사를 둬도 된다.

감사는 많게는 수백조원의 금융자산을 감독하는 자리인 만큼 최고경영자(CEO)급 대우를 받는다. 신한 국민 KEB하나 우리 등 4대 시중은행 모두 은행장과 상임감사 집무실이 같은 층에 있다. 전용 차량과 비서가 제공되고 시중은행은 연간 보수가 3억~4억원에 달한다. 장단기 성과급과 임원 퇴직위로금까지 합하면 3년 재임 시 20억원 안팎을 챙길 수 있다는 게 은행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현 정권 실세 등이 감사 자리를 노리다 보니 과도한 경영권 간섭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정병기 전 국민은행 감사는 2014년 국민은행이 주전산기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문제 제기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과 함께 금융당국에 특별검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탁과 각종 부작용을 우려해 상근감사를 따로 두지 않고 사외이사로만 감사위원회를 운영하는 금융회사도 있다. 한국씨티은행과 SC제일은행은 상근감사가 없다.

시중은행 감사는 “금융 환경이 급변하는데 전문성이 없는 감사가 오면 하는 일 없이 자리만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며 “금융을 모르는 정피아보다 ‘금피아(금융관료+마피아)’가 오히려 낫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