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역량과 첨단 정보기술(IT)을 토대로 K패션(패션 한류)을 선도하겠습니다.”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사진)은 20일 서울에서 열린 ‘컨데나스트 인터내셔널 럭셔리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이같이 말했다. 인재를 육성해 디자인 역량을 키우고 이를 삼성전자의 첨단 IT, 한류 콘텐츠와 결합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명품 패션 브랜드를 내놓겠다는 것이다.

이 사장은 K패션을 세계 시장에 알리기 위해 이날 처음으로 공식석상에서 연설했다. 세계 명품업계 주요 인사가 모여 현안을 논의하는 이 행사는 작년 4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처음 열렸다. 올해 한국 행사는 두 번째다.

◆“삼성물산, K패션 초석 다지는 중”

이 사장은 이날 흰색 블라우스와 검은색 롱재킷 바지 정장 차림으로 등장했다. 독특한 디자인의 구두(스텔라 매카트니)와 핸드백(알라이아)으로 패션 감각을 뽐냈다.

영어로 한 연설에서 그는 미래 명품 패션의 화두로 ‘무한(limitless) 가능성’을 제시했다. “패션이 빅데이터 가상현실(VR) 인공지능 등 첨단 IT와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융합해 새롭게 진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간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timeless) 가치를 지닌 제품’으로 인식됐던 명품 개념이 바뀔 것이라는 얘기다.

삼성물산의 제조·직매형 의류(SPA) 브랜드 에잇세컨즈를 예로 들었다. 에잇세컨즈가 빅데이터 분석 결과를 신상품 디자인과 색상에 반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패션쇼에 갈 필요 없이 거실에서 VR로 감상하고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바로 주문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나와 똑같이 생긴 아바타를 만들어 가상매장에 가서 옷을 입혀 보고 360도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변화는 밀레니얼 세대(1980년 이후 태어난 세대)가 주도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사장은 “이들은 이미 SNS를 통해 패션 흐름을 실시간으로 공유, 재생산하고 있다”며 “명품 패션업체들도 상품 마케팅 방식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유럽이 명품시장을 장악해왔지만 새로운 시대엔 아시아가 과거와 다른 독창적인 디자인을 내세워 세계 명품 패션 흐름의 중심지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사장은 “삼성물산은 새로운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탄탄한 초석을 다지고 있다”고 했다. 삼성물산은 1995년 한국 최초 디자인 학교인 SADI(Samsung Art & Design Institute)를 세웠다. 2005년엔 ‘삼성패션디자인펀드(SFDF)’를 설립했다. 지금까지 19개팀 디자이너에게 총 270만달러(약 31억원)를 지원했다.


◆한류 영향으로 아시아 유행 선도

서울은 차세대 세계 명품 패션 흐름을 주도하기에 유리한 입지를 갖추고 있다고 분석했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데다 K팝 등 다양한 한류 문화의 인기에 힘입어 아시아 시장의 유행을 선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K뷰티(화장품 한류)를 창출할 정도로 수준 높은 미(美)적 취향과 세계 최고 IT 인프라는 신제품의 성공 가능성을 가늠하는 데 유리하다”고 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도 “아시아 르네상스 시대가 왔다”며 “그 중심에 한국이 있다”고 진단했다. 성주그룹이 운영하는 패션 브랜드 MCM은 이날 10년간 1000만달러(약 113억원)를 사회에 공헌하겠다고 발표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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