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과 총알의 왕국’ 풍산이 지난해 기대 이하의 실적을 냈다. 풍산이 주력하고 있는 구리산업 업황이 나빠진 탓이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구리 수요가 줄어든 데다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서 매출 규모는 1년 전에 비해 14%가량 감소했다.

풍산은 구리산업 부진의 탈출구를 첨단소재에서 찾고 있다. 첨단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을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꾸준한 매출을 낼 수 있는 방위산업 분야 비중도 확대할 계획이다.
모바일 결제시대, 돈 안되는 '동전'…풍산, 첨단소재로 돌파구
동전 사용량 줄어들어 고민

풍산은 국내 동판(銅板) 시장에서 5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회사다. 세계 소전(素錢:동전에 무늬를 넣기 이전 상태의 제품) 시장의 53%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세계에 유통되는 동전 가운데 절반 이상이 풍산의 손을 거쳤다는 의미다. 이렇듯 진출한 사업에서는 탄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풍산이지만 전체 시장 위축이라는 악재까지 극복하지는 못했다.

풍산은 지난해 매출 2조8197억원을 기록했다. 2014년(3조3억원)보다 약 3%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1276억원에서 1111억원으로 13% 줄었다. 구리나 구리합금을 가공해 판, 관, 봉 등을 만드는 신동(伸銅)부문 매출이 줄어든 결과다. 풍산 관계자는 “저유가와 중국의 성장둔화 등으로 세계경기가 침체됐다”며 “그 결과 구리를 필요로 하는 산업에서 수요량이 줄어 실적이 부진했다”고 설명했다. 풍산의 지난해 동판 판매량은 12만4225t으로 전년 대비 9% 감소했다. 동관 판매량은 34% 줄었다. 구리 가격이 하락하면서 매출 규모가 줄어드는 상황도 발생했다.

소전사업의 실적도 나빠지고 있다. 신용카드와 모바일 결제 시스템이 발달하면서 세계 동전 사용 수요가 줄어들고 있어서다. 풍산은 1970년부터 소전사업에 진출했다. 1973년 대만에 소전을 수출하기 시작했고, 1997년에는 유럽 경쟁업체를 누르고 유럽연합(EU) 각국에 유로화용 소전을 공급했다. 현재 해외 60여개국에서 풍산이 제조한 소전을 쓰고 있다.

하지만 소전부문 매출은 2012년 이후 3년 연속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1877억원의 매출을 냈는데, 2014년(1918억원)에 비해 약 2% 감소한 규모다.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신용카드 사용량이 늘고, 모바일 결제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동전 수요가 감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 한국은행도 2020년까지 ‘동전 없는 사회’를 구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전기차 부품 등 신사업에 총력

류진 회장
류진 회장
풍산은 다양한 첨단소재를 개발하고 있다. 동판과 동관 등 기존 시장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결과다. 류진 회장은 1999년 취임 이후 ‘첨단소재 산업을 기반으로 한 세계 최고의 전문기업’이라는 목표를 제시하고 신성장동력을 찾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을 주문했다. 류 회장은 2011년 비철금속 업계 최초로 연구소(풍산기술연구원)를 개원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류 회장은 “수익성이 저조한 제품과 사업을 과감히 재편하고 고부가가치 전략제품 및 사업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풍산이 미래 먹거리로 노리는 분야는 전기자동차 부품과 2차전지에 사용되는 신소재다. 전자부품을 연결하는 커넥터 투자도 늘리고 있다. 항균동과 어망용 동합금 제품 등도 개발하고 있다.

꾸준한 매출을 내고 있는 방위산업 투자 역시 확대할 계획이다. 방위산업 매출은 2014년 7331억원에서 지난해 7509억원으로 증가했다. 1973년 정부로부터 탄약제조업체로 지정된 이후 군용탄약 생산을 시작했고, 현재 한국군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탄약을 제조한다. 스포츠탄 등 민간용 탄약도 생산하고 있다. 풍산은 40년 이상의 방위산업 노하우를 바탕으로 정밀 지능탄, 센서, 유도무기에 필요한 가속도계 등을 개발해 정밀방산분야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전략도 세웠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