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캐나다 셰일오일 생산업체들과 ‘치킨게임’을 벌여온 중동 산유국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한발 물러서는 것일까. 그동안 셰일오일 개발업체들이 셰일오일 생산을 급격히 늘리자 에너지 공급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 한 사우디와 러시아는 산유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견제해온 터였다.

지난 2월11일을 기점으로 등락을 거듭해온 국제 유가는 12일 사우디와 러시아의 생산량 동결 기대에 4% 넘게 뛰어올랐다. 더욱이 2014년 7월30일 이후 처음으로 200일 유가 이동평균선을 위쪽으로 뚫어냈다. 이동평균선은 특정 상품 가격을 일정 기간 평균한 값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여주는 그래프다. 가격이 200일선을 상향 돌파했다는 것은 추가 상승 가능성을 예측하게 한다.
사우디·러시아 '치킨게임' 일단 휴전…유가 상승 탄력받나
○올초 저점 대비 60% 올라

오랫동안 배럴당 100달러대 안팎에서 움직이던 유가(WTI 1개월 선물 기준)는 2014년 6월 이후 급락해 지난 1월20일(26.55달러)과 2월11일(26.21달러) 두 차례 바닥을 찍었다. 이런 가격이 60% 치솟아 12일 42.17달러를 기록했다. 브렌트유 2개월 선물도 1월20일 최저점(27.88달러) 대비 60% 상승했다.

불과 두 달여 전만 해도 사정은 달랐다. “구조적으로 유가가 오를 수 없다”는 시장 분위기가 팽배했다. “잘 해야 (일정 범위에서 오르내리는) 박스권”이라는 비관론이 넘쳐났다.

사우디와 러시아의 생산 동결 기대감이 시장의 분위기를 확 바꿔놨다. “이제는 상승 흐름을 탈 것”이라는 낙관론이 더 많아지고 있다. CNBC는 “유가가 200일 이동평균선을 뚫었다는 것을 추세 전환을 보여주는 신호로 시장이 읽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發 생산량 동결 논의

2014년 6월 이후 지난 2월까지 유가 하락기를 촉발한 계기는 중동계 산유국과 미국·캐나다 셰일오일 업계 간 치킨게임이었다. 점점 커지는 셰일오일 세력을 두고볼 수 없던 사우디 등은 유가 하락을 감수하며 증산을 선언했다.

핵개발 관련 서방의 경제 제재로 원유 수출길이 막힌 이란까지 증산에 나섰다. 1월 제재가 풀린 이란은 현재 하루 200만배럴인 수출량을 단계적으로 400만배럴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유가 급락에 돈줄이 마른 러시아 등 중동 외 산유국도 원유 퍼내기 경쟁에 가담했다. 그 결과 러시아는 사우디를 능가하는 세계 1위 산유국이 됐다.

중국의 경제성장세가 둔화하면서 원유 수요가 부진할 것이란 우려도 커졌다. 원유 공급초과 상태가 계속되면서 저장고는 꽉 들어찼다. 열차를 개조해 원유저장 탱크로 쓰는 상황에 이르자 유가에 대한 비관적 전망은 극에 달했다.

○점차 득세하는 낙관론

유가 하락 비관론이 유가 상승 낙관론으로 바뀐 것은 이런 요인이 상당 부분 해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와 이란 간 갈등으로 원유 가격 결정권이 전에 없이 약해진 석유수출국회의(OPEC)를 대체할 공급자 담합체제가 다시 가동될 가능성이 커졌다. 재정이 달려 사정이 급해진 러시아가 총대를 멨다. 산유량 감축은 아니라도 일단 1월을 기준점 삼아 동결부터 하자고 다른 산유국을 꾀기 시작했다. ‘공급이 더 늘지 않는다’는 메시지만 시장에 던져도 가격폭락 사태는 막을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사우디가 ‘OK’ 했다. 이란이 “우리는 생산 동결 논의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했지만 1, 2위 산유국을 비롯한 15개국이 손을 잡는다는 소식은 원유 트레이더들이 유가 강세에 베팅할 수 있는 자신감을 줬다. 15개 산유국의 생산량은 전체의 70% 수준이다.

○美재고 줄고, 달러도 약세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미국의 내년 산유량이 하루 56만배럴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것도 공급과잉 해소 가능성을 높였다. 마켓워치는 지난주 미국 원유 채굴장비 수가 3주 연속 감소해 2009년 11월 이후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고 전했다.

한때 저장할 곳이 없을 정도로 넘쳐나던 원유재고는 소폭이지만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EIA에 따르면 3월 마지막주 미국 내 원유재고는 전주 대비 490만배럴 줄었다. 320만배럴 증가를 예상했던 시장은 반색했다.

미국 달러가 약세로 돌아서면서 그동안 달러 강세 때문에 유가가 더 낮게 표시되던 효과가 사라진 것도 유가 상승 요인이다.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표시하는 달러인덱스는 1월20일 100에 근접했다가 12일 94까지 약 6% 내려갔다. 그만큼 달러로 표시되는 다른 자산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유가, 계속 오를까

러시아 석유회사 로스네프트의 이고르 세친 대표는 “유가가 최소 배럴당 50달러는 돼야 앞으로 공급부족 사태가 빚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유 트레이딩회사 군보르의 토르비요른 토른키스트 최고경영자(CEO)는 “과거 배럴당 100달러가 적정선(벤치마크)으로 여겨졌듯 이제는 배럴당 60~70달러가 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반면 에너지 정보업체 플래츠의 반다나 하리 수석애널리스트는 지난 5일 한국경제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시장이 논리적이고 냉정한 추론이 아니라 분위기에 휩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원자재업체 글렌코어의 알렉스 비어드 원유부문 대표도 “도하에서 엄청난 ‘깜짝소식’이 들려올 가능성은 별로 없다”며 “동결 결정만으로는 시장 상황이 크게 변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도하 회의 이후 추가 상승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론이다. 시장이 너무 과열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밥 피사니 CNBC 에디터는 “에너지 기업 주가가 너무 많이 오르고 있다”며 “유가가 내년까지 상승세를 유지하지 않으면 기대감이 꺾이면서 시장이 다시 추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