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살아나는 태양광 산업…해외 장비업체만 신난 까닭?
“국산 장비는 못 쓸 것 같아요. 독일 등 해외에서 들여올 예정입니다.”

태양광 전지·모듈 제조업체 A사 관계자는 제조장비 구입을 검토 중이다. 주문량이 늘어 기존 장비론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올 연말까지 200억원 가까이 투입해 생산량을 약 40% 늘릴 계획이다. 여기에 필요한 새로운 제조 기계 목록에서 국내산을 제외했다. 전량 해외에서 조달하기로 했다.

A사는 이전까지 전체 장비의 절반가량을 국산 장비로 채웠다. 독일 일본 등 해외 장비 성능이 더 좋기는 했다. 하지만 고장이 났을 때 수리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었다. 해외에서 기술자가 들어와야 해 길게는 2주 이상 기계를 놀려야 했다. 이에 반해 국산 장비는 바로 애프터서비스(AS)가 된다는 장점이 있었다.

태양광 장비가 외국산 일색인 것은 국내 장비 업체들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태양광산업은 지난 5년여간 구조조정 과정을 거쳤다. 공급 과잉으로 태양광 소재·부품 값이 폭락했다. 태양광 기업은 당초 계획된 투자를 보류하거나 취소했다. 그러자 장비 업체가 ‘직격탄’을 맞았다. 상당수가 도산했다. 일부 업체는 태양광 부문을 없애고 연관산업인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에 집중했다.

‘24시간 정비 서비스’를 해준다던 국내 태양광 장비 업체들은 “더 이상 사후관리를 할 수 없다”며 두 손을 드는 일이 발생했다. 국산 장비를 쓰는 태양광 업체는 고장이 났을 때 스스로 고쳐서 사용해야 했다. 수리가 안 되면 장비를 폐기하거나 매각했다. 현장 엔지니어들은 “국산 장비를 구입하지 말라”고 회사 측에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태양광 업황은 작년 말부터 조금씩 살아났다. 구조조정이 마무리되고 투자가 재개됐다. 이에 따른 장비 수요도 늘기 시작했다. LG전자는 올초 경북 구미 공장의 태양광 생산라인에 5272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한화큐셀은 충북 음성 공장의 태양광 모듈 생산량을 3배 가까이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투자 확대에 따른 혜택은 해외 장비 업체가 대부분 누리고 있다.

주영섭 중소기업청장은 지난달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산업 생태계 복원에 주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제품 제조뿐 아니라 이를 위한 연구개발(R&D), 인력, 장비 등 ‘생태계’를 잘 구축해야 산업 경쟁력이 생긴다는 얘기였다. 업계 관계자는 “장비산업을 일으키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해외 기업이 시장을 독식할 것”이라며 “태양광산업 생태계 복원을 위한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안재광 중소기업부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