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 반도체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한국의 수출 주력산업이 성숙기나 쇠퇴기에 들어섰다는 것은 한국 경제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주력산업마저 늙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감소세를 이어가는 수출이 큰 폭의 증가세로 반전될 가능성은 낮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선 경제 성장률은 물론 투자와 고용까지 나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수출이 활로를 찾기 위해서는 세계 경제 회복 등 대외 여건도 중요하지만, 기업들이 새로운 사업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늙어가는 주력산업] "컴퓨터·디스플레이 성장 멈춰…선박·섬유는 매출·이익 동반감소"
◆한계 부딪힌 주력 수출산업

대한상공회의소가 13대 주력 업종 수출제조업체 3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78.5%가 매출과 이익 등이 성숙·쇠퇴기에 들어섰다고 답했다. ‘성장기’라고 답한 곳은 21.5%에 그쳤다. 새로운 성장이 시작되는 ‘도입기’라고 답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주력 수출업체 10곳 중 8곳은 성장이 정체된 상태라고 진단했다고 할 수 있다.

업종별로 보면 성숙기라고 답한 업체는 컴퓨터(80%), 섬유(75%), 평판디스플레이(72.2%), 무선통신기기(71.4%)에서 많았다. 자동차(50%), 반도체(41.7%)는 비교적 적었다. 쇠퇴기라는 응답은 선박(26.1%), 섬유(25%), 평판디스플레이(22.2%)에서 많이 나왔다.

이런 인식은 수출에서도 확인된다. 관세청이 월간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70년 이후 최장기인 14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온 수출은 이달에도 큰 폭으로 줄어들 것이 확실시된다. 3월 들어 지난 20일까지 수출액은 237억72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2% 줄었다.

수출 부진은 생산, 투자, 소비 등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월 산업생산(-1.2%), 광공업생산(-1.8%), 서비스업생산(-1.9%), 소매판매(-1.4%), 설비투자(-6.0%) 등이 전달에 비해 일제히 하락했다.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72.6%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4월(72.5%) 이후 가장 낮았다.

◆신사업 성공이 수출 회복의 관건

주력산업의 정체는 매출 증가세 둔화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기업성과 평가사이트인 CEO스코어에 따르면 국내 증시에 상장된 시가총액 100대 기업의 지난해 매출은 1523조5192억원으로 전년보다 2.1%(30조8102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작년 인수합병으로 외형이 불어난 SK, 삼성물산, 하나금융지주, 한화 등을 제외한 95개사의 매출은 1395조2040억원으로 전년보다 1.7% 감소했다. 매출이 줄거나 정체한다는 것은 성장성이 그만큼 꺾였다는 걸 뜻한다.

전문가들은 주력산업이 늙어가고 있는 만큼 신사업에서 새로운 활력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한상의 조사에서도 기업의 86.6%는 “신사업 추진에 나서겠다”고 밝혀 인식을 같이했다. 신사업 분야로는 정보통신기술(ICT) 융합(47.9%), 신소재·나노(28.6%), 에너지 신산업(26.1%), 서비스산업 결합(9.7%), 바이오헬스(5.9%) 등을 꼽았다. ICT 융합부문에서는 사물인터넷(IoT)·스마트홈(43.9%), 드론·무인기기(30%), 3D 프린팅(12.3%), 인공지능·로봇(11.5%), 가상·증강현실 시스템(4.3%)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신사업이 성과를 내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가능성 검토 단계에 있다(56.6%)는 기업이 기술력 확보 등 착수 단계(23.2%)와 출시 단계(10.5%)에 있는 기업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신사업 추진의 어려움으로는 49.5%가 불투명한 수익성을 꼽았다. 관련 기술과 노하우 부족(21.8%), 장기전략 부재(15.8%), 미래정보 부족(11.9%) 등이 뒤를 이었다.

전수봉 대한상의 경제조사본부장은 “기업 대부분이 신산업의 필요성은 절감하지만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금융·노동개혁과 규제 정비 등 보다 적극적인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