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제조 혁신, '스마트 서비스'에 초점 맞춰야
‘디지털 적자생존(Digital Darwinism)’ 시대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세계 산업계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을 제대로 활용 못 하면 도태할 수밖에 없다. 전통 제조업체까지 ICT 융복합 혁신에 목매고 있는 까닭이다.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은 제품에 서비스를 결합해 판매하는 ‘디지털산업 기업’으로의 변화를 추진 중이다.

ICT업체인 애플, 삼성전자 등은 앞서 달리고 있다. 앱스토어, 간편결제서비스 등 제품 자체보다 서비스 개발·확산에 더 적극적이다. 이처럼 시장을 주도하는 제조업체가 앞다퉈 서비스 개발에 나서는 배경에 대해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은 “ICT 업체로 인해 기존 제품이 점점 저수익의 일상용품으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통 제조업체들은 ICT로 창출된 서비스를 결합한 제품으로 상품목록을 바꾸고 있다. 이런 흐름에서 뒤처지면 아무리 시장을 주도하던 글로벌 기업이라도 순식간에 몰락한다는 사실을 핀란드의 초우량 통신기업 노키아를 통해 확인했다. 경쟁력 있는 유형의 제품을 토대로 해서 서비스 판매에 주력하는 ‘서비스 중심의 제조업’으로의 변신을 서둘러야 한다. 앞으로는 유형의 제품에 서비스를 결합해 판매하는 업체가 시장주도권을 잡고 최종 고객을 상대로 높은 수익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한 제조업체는 시장 통제력을 잃고, 시장주도업체를 위한 제품을 생산해 공급하는 역할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현재로서는 디지털 기술력에다가 플랫폼을 장악하고 있는 ICT 업체가 시장주도업체 지위에 가장 가까이 가 있다. 미국의 유통 및 ICT 업체인 아마존은 GE, 월풀, 삼성전자 등 제조업체와 손잡고 프린터, 세탁기 같은 기기들의 토너나 세제가 떨어져서 보충이 필요해지면 이들 기기가 자동으로 발주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제 대형 제조업체는 최종 소비자가 아닌 아마존을 상대해야 하는 구조가 정착되고 있는 것이다. 특정 기계나 장비, 자동차 업체도 이런 상황을 맞게 될지 모른다.

제조 혁신은 유형의 제품과 서비스를 결합한 제품을 개발하는 제품 혁신을 종착지로 삼아야 한다. 새로운 유형의 제품 개발에서 더 나아가 서비스까지 포함한 신제품을 개발해야만 제조 혁신을 완성할 수 있다. 그런데 대다수 제조 혁신 정책은 첨단 제조공장인 ‘스마트 팩토리’와 같은 공정혁신에 집중돼 있다. 제품 혁신도 기존 유형의 제품 혁신에 머물러 있다.

제조업이 서비스 개발에 나서려면 유형의 제품을 지능화하고, 이들 제품과 연결해 대량의 데이터를 통합 관리·분석하는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인공지능, 통합플랫폼과 관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이런 토대 위에서 다양한 응용 서비스를 개발하는 체제도 갖춰야 한다. 그러나 유형의 제품을 지능화하는 데 필요한 소프트웨어는 자동차, 조선, 디지털 가전 등 완제품의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을 수입하고 있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부문의 기술력은 많이 뒤처져 있으며, 플랫폼 역시 해외 플랫폼에 의존하고 있다. 응용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제조업체는 전체의 3.94%(2011년 기준)로 미국, 독일, 일본 업체의 30~50%에 비해 극히 낮은 수준이다. ICT 서비스 부문의 연구개발(R&D)도 제조 부문에 비해 규모가 아주 작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공정 혁신, 제품 혁신에만 집중한다면 국내 제조업체는 상당수 ICT 제품처럼 ‘구글 안드로이드’ 틀에 갇힐 가능성이 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이 아니라 융합적 시각으로 산업정책을 이끌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학계, 민간 제조업체와 서비스 업체, ICT 업체 간 협력이 절대적이다.

이장균 <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johnlee@hr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