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불 켜진 한국 제조업] 조선·자동차 등 외형 성장에 취해 예고된 위기에도 '15년 허송'
2014년 한국 제조업의 경영지표가 중국과 일본에 밀린 것은 2000년대 들어 스마트폰 정도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만한 신성장 동력을 찾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주력 수출산업이 선진국과 경쟁력 격차는 좁히지 못한 채 중국 등 후발주자들의 추격에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은 일찌감치 제기됐다(2002년 삼성경제연구소 ‘한국 주력산업의 경쟁력 분석’). 이 같은 ‘예고된 위기’에도 한국 제조업체는 지난 15년간 무기력하게 한·중·일 3개국 간 경쟁에서 밀려나는 모습을 보였다.

당장 6개월 뒤면 대형 조선소에서 빈 도크(선박 건조시설)가 생길 것이란 전망이 나온 조선업이 대표적이다. 한국의 조선산업은 2000년대 초반 세계 최고 자리에 올라섰다. 1999년 세계 조선 수주량 부문에서 한국은 40.9%의 시장점유율로 2위 일본(30.0%)을 큰 격차로 제쳤다. 2000년에는 선박 건조 부문에서도 45%를 차지해 일본(29%)을 16%포인트 앞질렀다. 하지만 이 시점부터 곳곳에서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일본이 고부가가치 선박 제조에 나서고 있다는 점, 저임금을 앞세운 중국이 설비투자를 대규모 확대하고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 조선업은 미국 등 셰일가스 혁명의 큰 흐름을 외면한 채 국제 유가가 하락하면 큰 타격을 받을 드릴십 해양플랜트 등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는 방향착오를 범했다.

외형상 급성장했다는 자동차산업도 2000년대 이후 차세대 먹거리 마련이라는 측면에서는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했다. 현대자동차가 미국 중국 등에서 점유율을 높이며 선전했지만 전기자동차 등 미래를 내다본 제품 경쟁력에선 유럽과 일본 경쟁업체에 뒤처지는 양상을 보였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 자동차업체는 가격경쟁력과 생산성 측면에서는 중국에 밀리고, 전기차 스마트카 등 미래산업에선 일본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개발(R&D) 등 장기 투자에서도 2000년대 초 지적됐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R&D 비용 지출 1000대 기업 중 한국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대규모 R&D를 시행하는 기업 수에서 한·중·일 3국 중 꼴찌였다. 2014년 R&D 비용 지출기업 상위 ‘글로벌 1000’에서 한국 기업 수는 24개였다. 2004년 9개에서 15개가 늘었다. 같은 기간 중국은 4개에서 46개로 폭증하며 R&D 분야에서 성장률은 물론 절대수치에서도 한국을 압도했다. 일본도 R&D 지출 1000대 기업 수가 153개에서 168개로 늘면서 한국과 비교 자체를 불허하고 있다.

1997년 미국 컨설팅 전문업체 부즈앨런앤드해밀턴은 ‘한국 경제의 진단 보고서’에서 “한국은 기술을 경쟁 우위로 하는 상품에서는 미국 일본 등에 밀리고, 임금을 경쟁 우위로 하는 상품에서는 중국 동남아시아 등 아세안에 못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