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Insight] 미래학자 피터 비숍 "글로벌 환경 문제 심각…미래는 IT 아닌 BT에 달렸다"
“미래는 예측하는 게 아니라 최적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현실화하는 것입니다.”

미래학자 피터 비숍 미국 휴스턴대 명예교수(사진)는 “미래는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미래에 어떤 일이 생긴다고 예측하는 걸 ‘기대 미래’라고 하는데 이는 돌발 변수가 없을 때만 가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숍 명예교수는 세계 최초로 미래학 프로그램을 개설한 텍사스 휴스턴대에서 30년 동안 강단에 선 대표적인 미래학자다. IBM, 미 항공우주국(NASA) 존스스페이스센터, 네슬레, 쉘, 미국중앙정보부(CIA), 캘로그재단, 캘리포니아 환경보호재단, 미국 해병대 등을 대상으로 미래전략 수립 자문활동을 펼쳤다. 그에게 미래학에 대해 물었다.

▷컨설팅과는 어떻게 다른가.

“컨설팅은 현재 상황을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한다. 미래학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전제로 대안을 제시한다. 어떤 일이 생기길 기대하고 기다리는 게 아니라 준비 방법과 선호하는 대안을 선택하게 해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을 연구한다. 이를 위해 발생 가능한 여러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 중 실현 가능성이 높고 유익한 시나리오를 선택해 현실화시켜나가는 것이다.”

▷분석적 사고와 직관적 사고 중 어느 쪽에 가까운가.

“복합 작용이다. 돌발변수가 없다고 가정하는 ‘기대 미래’는 분석적 사고를 통해 전망한다. 현실의 돌발변수를 반영하는 ‘대안 미래’는 가정이 변하거나 변수가 생길 수 있다는 창의적이고 직관적인 생각을 해야만 다양한 시나리오를 마련할 수 있다.”

▷미래 예측의 성공 사례를 든다면.

“기업들은 몇십년 동안 자사 전략에 대한 누설 방지 계약을 요구하기 때문에 언급하기 어렵다. 많이 알려진 쉘의 경우를 보자. 이 회사는 1973년 1차 오일쇼크가 왔을 때 미래전략 조직기구를 마련하고 1978년 비즈니스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당시 대부분 전문가는 기름값 상승을 전망하면서 장기거래 계약을 권했다. 그러나 쉘은 가격 변동폭이 커지거나 급락할 경우의 시나리오도 만들었다. 이에 따라 스팟거래 회사를 설립했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 기름값은 예상을 깨고 급락했다. 대부분 에너지 기업이 속수무책일 때 쉘은 큰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 미래학자들은 천연가스 개발에 대한 고민도 풀어줬다. 당시 소련이 유럽에 충분한 양의 가스를 공급하고 있었기 때문에 개발무용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쉘은 ‘만약 소련이 붕괴한다면’이란 미래학자들의 시나리오를 받아들여 개발을 강행했고, 때마침 소련이 붕괴하면서 가스 시장 지배력을 높일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떤 산업이 떠오른다고 보나.

“모든 산업을 보면 S자 성장곡선을 그린다. 지금은 정보기술(IT)산업이 전부인것처럼 보이지만 훗날 오늘을 뒤돌아 보면 IT는 본질이 아니라 다른 산업의 성장을 돕는 수단이란 걸 알게 될 것이다. IT 이후에는 바이오기술(BT)이 떠오를 것이다. 환경 관련 문제는 특정 지역에 국한해 생각할 수 없는 글로벌 이슈다. 그럼에도 인류 공동의 환경문제를 국가별로 대응하고 있어 문제가 심화될 것이다. 국가별 괴리가 심해지면 인류에게 재앙이 되기 때문에 머잖아 변혁이 올 수밖에 없다. 이를 예방하고 해결하는 솔루션은 BT가 될 것이다. IT는 결국 BT로 가기 위한 기술적 가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기술과 시장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트렌드를 좇기보다 기업이 망할 가능성이 어디에 있나부터 찾아야 한다. 성장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한다. 기업이 망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고민하다 보면 실적 쌓기에 급급해서 못 보던 것들이 보일 것이다. 시나리오대로 악재가 생기면 준비가 돼 있으니 리스크를 줄일 수 있고, 다행히 악재가 안 생긴다 해도 변화에 대한 대응능력이 높아질 것이다. 저명한 학자의 전망을 신봉하거나 지식을 쌓으려고 매달릴 필요도 없다. 변수 발생 가능성을 상상하고 고민하다 보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고 경영 리스크도 줄일 수 있다.”

▷저성장기를 맞은 한국 기업들에 조언한다면.

“한국 경제는 눈부신 속도로 성장했다. 그 배경에는 값싸고 성실한 노동력과 열심히 일하는 문화, 풍부한 자본, 높은 교육열 등의 자원이 성공 요소로 작용했다. 이제는 요소 투입형 성장에 한계가 왔다고 본다. 과거 유용했던 요소들이 오히려 짐이 될 수 있다. 혁신을 위해 버릴 건 버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살펴봐야 한다.”

비숍 명예교수는 2년 전부터 청소년 교육에 관심을 쏟고 있다. 이를 위해 ‘미래 퓨처 재단’을 설립했다. 청소년을 가르쳐야 변화의 속도가 빨라진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국 정부와 기업에 전략적 미래예측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국제미래전략기구(GSFI)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박정근 휴스턴대 교수와 이석형 청운대 교수 등이 함께하고 있다.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 사진=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