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계소득 증가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6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소비심리도 살아나지 않았다. 물가를 고려한 가계 지출은 한 해 전보다 되레 줄었다. 가계가 소비를 자제하는 현상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불안한 경기에 노후 걱정까지 더해져 지갑을 쉽게 열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불황에 지갑 닫은 가계…실질소비 감소
◆메르스에 자영업 타격

통계청이 26일 발표한 ‘2015년 가계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37만3000원으로 한 해 전보다 1.6% 증가했다. 연간 소득 증가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1.2%) 이후 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2014년 가계소득 증가율(3.4%)과 비교하면 반토막 이하로 떨어졌다. 물가를 고려한 실질 소득은 0.9% 늘어나는 데 그쳤다.

소득 부문별로는 사업소득의 부진이 두드러졌다. 전년보다 1.9% 줄어들며 2005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뒤 처음 감소세를 나타냈다. 지난해 자영업자들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여파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데 따른 것이란 풀이가 나온다. 반면 이전소득(생산활동을 하지 않아도 정부가 무상으로 주는 소득)은 9.4% 급증했다. 저소득층 생계급여가 오르고 근로·자녀장려금 지급이 확대된 영향이다. 근로소득은 1.6% 늘었다.

메르스 여파를 이겨내기 위해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등 소비 활성화 대책이 쏟아졌지만 지갑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256만3000원으로 0.5% 늘어나는 데 그쳤다. 증가폭은 역대 최저다. 물가를 고려한 실질 소비지출은 0.2% 줄었다.

◆노후 걱정에 발목 잡힌 소비

소비지출을 업종별로 따져보면 가계는 주거 보건 식료품비 등 필요한 부분에만 지출을 늘렸다. 주거·수도·광열 지출은 역대 최대인 4.8% 증가했다. 월세 가구 비중이 늘며 주거비가 한 해 전보다 20.8% 급증한 영향이다. 보건 지출도 3.6% 늘어났다. 담배가격 인상 등으로 담배·주류 지출도 18.8% 급증했다.

반면 의류·신발 지출은 4.4% 줄었다. 전체 교통비 지출도 3.7% 감소했다. 개별소비세 인하로 자동차 구입 지출이 2.4% 늘었지만 유류비가 크게 감소하며 전체 지출액을 끌어내렸다. 통신(-1.7%) 교육(-0.4%) 지출도 감소했다.

각종 세금, 연금, 사회보험료가 포함되는 비(非)소비지출은 81만원으로 전년보다 0.7% 증가했다. 저금리 기조로 이자비용(-5.9%)이 큰 폭으로 줄었지만 주택 거래량이 늘면서 취득세가 증가해 비경상조세(9.5%)가 대폭 증가했다. 연금 사회보험 지출도 각각 2.4%, 3.7% 늘어 가계에 부담이 됐다.

지난해 가계의 평균 소비성향(소득에 대한 소비 비율)은 71.9%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월 100만원을 버는 가구(가처분소득 기준)가 71만9000원만 쓰고 28만1000원은 남겨뒀다는 의미다. 가계의 평균 소비성향은 2011년부터 5년 연속 하락세다. 갈수록 가계가 소비를 자제하고 있다는 뜻이다.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노후 걱정도 지갑을 닫게 한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임진 금융연구원 거시국제금융연구실장은 “소비성향 하락은 불확실한 경제 상황과 고령화하는 인구구조 변화에 기인하고 있어 당분간 전환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