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며 삼성그룹과 일전을 치른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파생 상품인 총수익스와프(TRS)를 악용해 몰래 지분을 늘린 행위에 대한 국내 첫 규제 사례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24일 오후 정례회의를 열고 엘리엇을 검찰에 통보하기로 한 원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검찰에 엘리엇의 혐의 내용을 통보하고 조사 자료 일체를 넘겼다.

증선위는 엘리엇이 작년 삼성물산 지분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TRS를 악용, 몰래 지분을 늘린 것이 '5% 룰'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자본시장법은 자신은 물론 특별 관계자가 합쳐서 특정 회사 주식을 5% 이상 보유하게 되면 5일 이내에 이를 공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엘리엇은 작년 6월4일 삼성물산 지분 7.12%(1112만5927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하면서 시장에 전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엘리엇은 작년 6월2일까지 삼성물산 주식 4.95%(773만2779주)를 보유하고 있다가 이튿날 보유 지분을 2.17%(339만3148주) 추가 확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증선위는 엘리엇이 TRS 계약을 통해 실질적으로 지배한 지분까지 더하면 6월4일이 아닌 5월 말께 이미 대량 보유 공시를 했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엘리엇은 TRS 계약을 통해 메릴린치, 시티 등 외국계 증권사들이 삼성물산 주식을 사들이게 하고 나서 대량 보유 공시 시점에 계약을 해지하고 이를 돌려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당국은 재무적 투자 차원에서 TRS를 활용하는 것은 투자자의 마음이지만 이번처럼 공격적 경영 참여를 염두에 두고 TRS 계약을 활용, 실질적 지분을 늘리는 것은 공시 제도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5% 이상 지분 보유를 공시하도록 한 것은 공격 대상이 되는 회사에 방어권을 보장해주고 일반 투자자들이 이런 사정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데 TRS를 활용해 한꺼번에 지분을 늘리는 것을 용인하면 공시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진다고 금융당국은 강조했다.

당국은 미국과 독일 등 금융 선진국에서 TRS를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나 공격적 경영 참여에 활용한 다수 경우가 불법이라는 사법 판단을 받은 점도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TRS를 악용해 지분을 늘린 행위에 대한 제재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향후 검찰이 엘리엇을 기소하고 법원이 유죄 판단을 내리면 앞으로 우리나라 자본시장에서 TRS를 악용한 '스텔스 공격'은 불가능해질 전망이다.

한편 이번 사건은 고발보다는 한 단계 낮은 통보 사건이므로 검찰은 법리 검토 작업을 벌여 유죄 심증이 서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하게 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조사팀이 외국 사례 등을 다수 조사해 내린 판단인 만큼 검찰이 불기소장을 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엘리엇은 무죄를 적극적으로 주장할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 검찰의 수사에 협조할지는 미지수다.

엘리엇 측은 조만간 우리 금융당국의 제재 결정에 대한 입장을 발표할 것으로 전해졌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