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금융 컨퍼런스 23일 개막]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 "돈 푼다고 위기 해소 안돼…한국, 금리인하 서두를 필요 없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2013년)인 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교수(사진)가 혼돈의 세계 경제 속에서 한국 경제가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한국경제TV와 한경미디어그룹이 2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여는 ‘2016 세계 경제·금융 컨퍼런스’ 기조연설을 통해서다.

올해로 여덟 번째인 이번 ‘세계 경제·금융 컨퍼런스’는 세계적인 석학과 리더들이 모여 글로벌 시장의 큰 흐름을 읽고 한국 경제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토론의 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올해 행사는 ‘혼돈의 세계 경제, 번영을 위한 도전’이라는 주제로 진행된다. 세계 경제는 미국의 양적 완화 종료와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단행, 중국 등 신흥국 위기 고조 등으로 연초부터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다.

◆“중국 변동성 확대는 과민반응 탓”

실러 교수는 방한을 앞두고 21일 진행한 한국경제TV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현재 세계 경제 혼돈의 배경을 심리적인 영향으로 설명했다. 그는 “연초 중국 홍콩 등 아시아와 브라질 러시아 등 변동성이 큰 시장을 경험하면서 사람들의 사고의 틀이 바뀌고 있다”며 “이로 인해 변동성이 더 커지고 세계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다만 “세계 경제 위기 가능성은 크지 않고 침체를 논하기엔 시기상조”라며 “변동성이 큰 신흥시장도 앞으로 1년 동안은 성장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실러 교수는 경제학에 심리학을 접목한 행동경제학의 대가로 꼽힌다. 주식, 부동산 등의 자산가격은 정치 사회 심리 등 다양한 요인에 영향을 받고, 시장은 인간의 비합리적인 판단과 행동으로 왜곡될 수 있다는 명제를 제시했다. 사람들이 시장의 수급을 감안해 합리적으로 행동하며 이에 따라 시장이 균형을 찾아간다는 ‘효율적 시장 가설’과는 정반대다. 2013년에는 자산가격의 경험적 분석에 기여한 공로로 유진 파마 미국 시카고대 교수 등과 함께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실러 교수는 중국 경제 위기도 행동경제학 관점에서 분석했다. 실러 교수는 “중국 경제가 연착륙하느냐, 경착륙하느냐에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다”며 “오히려 중국의 급격한 변동성이 더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전 세계가 불안, 두려움을 느끼면서 중국이 아니라 각국 시장에서의 투자 심리까지 위축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 세계가 중국에 대해 과도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판단하지만 이런 과민반응이 실제 존재하기 때문에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결국 불안감으로 인해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게 되는 ‘자기충족적 예언’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중국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확장적 통화정책 만능 아냐”

실러 교수는 최근 각국이 펴고 있는 확장적 통화정책으로는 세계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조언했다. 그는 “시장이 불안하다고 통화당국이 지금 당장 금리 인하 조치를 취한다는 것 역시 과민반응”이라며 “세계 경제 흐름을 관망하는 것만으로도 통화당국이 필요하면 조치를 취할 것이란 안도감을 준다”고 했다.

실러 교수는 미국 중앙은행(Fed)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에 대해선 “당분간 유예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세계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져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적극적으로 금리 인상에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 뒤 “미국이 추가 금리 인상 계획을 유보하는 것처럼 각국이 금리 인하 시기를 관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한국 상황도 예외가 아니라고 진단했다. 실러 교수는 “한국의 저금리 기조는 계속 유지하는 것이 맞고 경기가 더 둔화된다면 낮출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한국은 아시아 지역에서 유일하게 안정된 나라로 (금리를 더 낮출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 경제는 몇몇 취약점이 있어도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며 “한국 건설부문의 둔화는 정상적인 조정 과정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북한으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성이 존재하지만 이 문제가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진 않다”고 선을 그었다. 실러 교수는 “유가 하락이 단기적으로 악재로 나타날 수 있지만 한국 같은 원유 수입국엔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 실러 교수는…

미국 대도시 집값 분석…'케이스-실러지수' 개발

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교수는 부동산 주식 등 자산가격 분석에 새로운 틀을 제시한 경제학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실러 교수는 2000년 펴낸 책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을 통해 주식시장 닷컴 거품의 붕괴를 예측했다. 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엔 부동산 거품의 붕괴를 우려해 주목받기도 했다.

미국 주요 대도시 집값을 집계하는 ‘케이스-실러지수’는 실러 교수가 칼 케이스 웰즐리대 교수와 함께 창안한 지표다. 미국의 주택가격 상황을 파악하는 데 적합한 지수라는 평가를 받으며 널리 쓰이고 있다. 신용평가 업체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이 지표를 토대로 매월 ‘S&P케이스실러지수’를 발표하고 있다.

실러 교수는 주식시장 분석 지표인 ‘경기조정주가수익비율(CAPE)’도 고안했다. 주가가 지난 10년간 평균 주당순이익의 몇 배인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배수가 높을수록 주식이 고평가됐다는 의미다. ‘실러 주가수익비율(P/E)’로도 불린다.

지난해 실러 교수는 미국 증시에 대해 “2000년 닷컴 거품 이후 가장 과열된 상태”라고 수차례 경고했다. CAPE의 평균값이 20세기 15.21이었는데 지난해 26~27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것이다. 실러 교수는 현재 한국 증시에 대해선 “CAPE 비율이 15 이하로 과열되지 않고 합리적인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