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털, 우선주 투자 비중 '사상 최대'…지난해 8781억원 투자, 전체 신규투자액의 42% 차지
국내 벤처캐피털이 벤처·중소기업에 우선주를 투자하는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벤처기업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이 지난 몇 년간 크게 상승한 가운데 벤처캐피털들이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투자할 수 있는 수단으로 우선주가 급부상한 데 따른 것이란 설명이다.

○우선주 투자비중 ‘나홀로 증가’

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국내 벤처캐피털이 지난해 집행한 전체 신규 투자액(2조858억원) 중 우선주 투자는 8781억원으로 42.1%에 달했다. 벤처캐피탈협회가 2005년부터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래 최고치다. 우선주 투자 비중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꾸준히 30% 중후반대를 유지해 왔지만 지난해 ‘40% 벽’을 넘어섰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벤처캐피털은 우선주 투자를 할 때 대부분 상환전환우선주(RCPS) 형태로 자금을 집행한다. RCPS는 특정 시점에 원금과 이자를 상환해 달라고 기업에 요구할 수도 있고 보통주로 전환하는 것도 가능한 우선주다. RCPS 투자자들은 보통주보다 선순위로 배당을 받을 수 있지만 투자를 받은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잉여금이 있어야만 배당이 가능하다.

우선주를 제외하면 지난해 다른 유형의 투자는 전반적으로 전년보다 정체 또는 감소세를 나타냈다.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이른바 ‘주식연계채권’ 투자 비중은 지난해 15.7%에 머물렀다. 주식연계채권 투자 비중은 2013년 22.1%에 달하기도 했지만 2014년 20.0%로 낮아진 뒤 지난해엔 아예 10% 중반대로 주저앉았다.

기업이 아닌 영화나 드라마 같은 특정 사업에 직접 투자하는 ‘프로젝트 투자 비중’도 지난해 11.8%에 머물면서 전년(16.4%)에 비해 4.6%포인트 감소했다.

보통주 투자 비중은 지난해 20.3%로 전년(20.1%) 대비 횡보세를 보였다. 보통주 투자 비중은 2013년 24.7%에 달하기도 했지만 2014년부터 2년 연속 가까스로 20%를 넘겼다.

○신생 기업 투자 증가가 배경

투자 대상 기업의 업력별로는 국내 벤처캐피털은 지난해 설립 후 3년 이하인 ‘초기 기업’에 6472억원, 설립 후 3년 초과 7년 이하인 ‘중기 기업’에 5828억원을 각각 투자했다. 이들 초기와 중기 기업 투자를 합친 금액의 투자 비중은 58.9%로 전년의 55.6%보다 3.3%포인트 상승했다. 반면 설립 이후 7년이 넘은 ‘장기 기업’ 투자 비중은 2014년 44.4%에서 지난해 41.1%포인트로 같은 폭 감소했다.

지난해 RCPS를 중심으로 벤처캐피털의 우선주 투자 비중이 급상승한 것은 이처럼 업력이 짧은 기업들에 대한 자금 집행을 상대적으로 늘린 것이 기본적인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 많다. 일반적으로 벤처캐피털은 업력이 긴 업체에 대해서는 보통주 투자를 선호하는 반면 설립한 지 얼마 안 된 신생 기업에 대해서는 RCPS나 CB, BW 투자를 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업력이 긴 업체들은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있는 경우가 많아 보통주를 투자해도 상대적으로 쉽게 회수할 수 있지만, 신생 업체들은 그렇지 못해서다.

작년에는 RCPS가 CB·BW보다 더욱 투자 매력이 커졌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벤처기업의 밸류에이션이 크게 높아진 결과다. 벤처기업들의 밸류에이션이 상승하다보니 벤처캐피털이 보유한 CB나 BW를 활용해 뒤늦게 보통주를 취득하려 할 때 해당 주식연계채권 투자 시점에 비해 훨씬 높은 가격을 줘야 하는 경우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처음부터 RCPS로 투자하는 것이 CB나 BW보다 결과적으로 보통주를 싸게 확보하는 수단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투자를 받는 기업 입장에서도 상황에 따라 원리금을 돌려줘야 하는 CB나 BW 같은 채권보다 주식으로 투자받는 것을 선호하다 보니 RCPS 투자가 더욱 빠르게 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벤처캐피털 투자담당 임원은 “최근 정부가 모태펀드 등을 통해 대규모 벤처펀드를 조성함에 따라 신생 기업 투자 재원이 풍부하다”며 “벤처캐피털이 CB나 BW 투자를 줄이고 RCPS 투자를 늘리는 경향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오동혁 기자 otto8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