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에 등장한 뭉크의 ‘절규’. 한경DB
2012년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에 등장한 뭉크의 ‘절규’. 한경DB
지난해 11월 미국 뉴욕 크리스티의 모딜리아니 ‘누워 있는 나부’ 경매 현장. 한경DB
지난해 11월 미국 뉴욕 크리스티의 모딜리아니 ‘누워 있는 나부’ 경매 현장. 한경DB
2005년 4월 일본 TV 부품업체 마스프로 덴코의 도쿄 사무실. 세계 미술품 경매의 양대 산맥인 소더비와 크리스티 대표자들이 모였다. 당시 2000만달러에 이르는 하시야마 다카시 마스프로 덴코 사장의 컬렉션 경매업체를 선정하기 위해서였다. 선정 방식은 가위 바위 보. 소더비와 크리스티 모두 경매 수수료 등에 대해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며 치열한 경쟁을 하는 통에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기 어려웠던 하시야마 사장의 제안에 따른 것이었다. 이날 가위 바위 보의 승자는 크리스티였다. 파블로 피카소와 빈센트 반 고흐의 유화 작품 등 넉 점의 경매권을 얻은 크리스티는 이를 2280만달러에 팔았다. 하시야마 회장에게는 그림값으로 1780만달러를 돌려줬다. 가위 바위 보 승리의 대가로 500만달러를 챙긴 셈이다. 소더비와 크리스티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다.

250여년간 이어진 숙명의 라이벌

[BIZ Insight] 소더비 vs 크리스티, 경매 시장 '250년 라이벌'…중저가·온라인시장서 격돌
소더비와 크리스티의 오랜 라이벌 관계가 시작된 것은 17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두주자는 소더비였다. 1744년 새뮤얼 베이커가 영국 런던에서 희귀 중고서적을 경매에 부치면서다. 1778년 조카인 존 소더비가 회사를 물려받고 사명을 소더비로 바꾸었다. 그는 유럽 귀족들의 고급 소장품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사세를 확장했다.

크리스티의 시작은 1766년부터다. 제임스 크리스티가 설립한 이 경매회사는 소더비보다 출발은 20여년 늦었지만 미술품 경매 분야에 먼저 뛰어들면서 차별화 전략으로 승부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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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소더비는 1955년 미국 뉴욕 사무소를 연 데 이어 1964년 미국 경매회사 파크 바넷을 인수하면서 세계시장으로 무대를 넓혔다. 소더비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1957년 네덜란드 은행가 와인버거의 소장품을 경매에 부친 ‘와인버거 컬렉션’이다. 와인버거가 2차 세계대전 중에 모은 고흐, 르누아르 등의 미술작품 경매에는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등 유명인사 3000여명이 참가해 화제를 모았다. 1958년 이탈리아 로마, 1968년 스위스 제네바 등에 경매장을 설립한 크리스티도 1977년 미국에 진출하면서 소더비와의 경쟁구도를 가속화했다.

두 회사는 세계 미술품 경매의 85%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고흐의 ‘해바라기’를 비롯해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 피카소의 ‘여인의 두상’ 등의 미술품들이 양대 경매회사를 통해 팔려나간 대표작들이다. 지난달 30일자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두 회사의 외형은 비슷한 수준이다. 직원 수는 소더비가 2000명, 크리스티가 1600명이다. 두 회사는 각각 40개국에 140개의 지사를 두고 있으며 해마다 약 750회의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두 회사 모두 경쟁 의식 때문에 외형을 유지하는 데 민감하다고 전했다.

세계 경제 침체…경매업계도 불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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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 경매업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꾸준한 성장을 지속해왔지만 지난해 성적이 꺾였다. 크리스티는 지난달 26일 지난해 매출이 2014년 대비 5% 감소한 74억달러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스테판 브룩스 부대표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해명했지만, 우려의 시선이 가시지 않고 있다. 경기 침체로 러시아 등의 신흥 부호들이 미술품 시장에서 발을 빼고 있어서다. 크리스티의 매출 부진은 최근 수집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시들해진 옛 거장들의 그림뿐 아니라 시계, 와인, 현대미술 등에 대한 세계 신흥 부호들의 관심이 줄어든 것도 원인이 되고 있다. 크리스티에 앞서 소더비도 지난해 4분기 손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경매업계는 세계 경기 침체뿐 아니라 양대 경매업체의 지나친 출혈 경쟁도 실적 부진을 부추겼다고 지적한다. 두 회사가 고가의 미술품을 유치하고 판매자와 구매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제시하는 보장가 제도가 경영난을 불러오는 요인이 되고 있어서다. 보장가는 경매회사가 소장품을 경매에 부치는 판매자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금액을 미리 보장해주는 옵션이다. 보장가 아래 가격에 낙찰될 경우 경매회사가 차액을 지급하겠다는 조건이다.

소더비는 지난해 11월 알프레드 토브먼 전 회장의 소장품에 5억1500만달러에 이르는 보장가를 제시했다가 1200만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앞서 크리스티가 4억달러를 제시했으나 전 회장의 소장품을 라이벌사에 빼앗길 수 없었던 소더비가 무리한 보장가를 제시한 탓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두 경매회사가 양강 체제를 유지하는 데 그만큼 비용이 들어간다”며 “부유한 소장가들은 이들 두 경매회사가 보장가를 끌어올리도록 싸움을 붙여 덕을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중저가 등 틈새시장으로 돌파구

소더비는 지난해 이베이와 함께 5건의 온라인 경매를 진행했다. 크리스티도 자체 온라인 경매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유럽순수예술협회(TEFAF)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을 통한 예술품 판매는 36억달러에 이르렀다. 전체 미술품 판매 가치의 약 6%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데이비드 굿맨 소더비 디지털마케팅부문 책임자는 “구매자들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편리하게 미술품을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온라인 시장은 더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대 경매사는 올 들어 중저가 시장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크리스티는 “10만~200만달러 규모의 미술품 경매를 활성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테드 스미스 소더비 최고경영자도 2만5000~100만달러의 중간 시장을 올해 핵심 목표로 삼고 있다. 아울러 소더비는 지난달 미술품 전문 자문회사인 아트에이전스파트너(AAP)를 인수해 경매업계에서 화제를 모았다. 설립 2년이 채 안 된 소규모 업체에 8500만달러를 들였기 때문이다. 이 회사 공동창업자들이 세계 최상위 수집가들과 네트워크가 강하다는 점을 높이 산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20세기와 21세기 현대 미술품을 다루는 AAP를 인수함으로써 소더비는 개인 판매를 늘리고 이익을 극대화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