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 폭락에 산유국들의 위기도 가속화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 원유 수출에 재정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는 국가들은 재정난이 심해지면서 비상 상황에 몰리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3일 저유가로 재정 수입이 급감한 러시아가 지난해 말 정부 예산을 10% 줄이기로 한 데 이어 최근 정부 지출을 91억달러(약 11조원) 추가 삭감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국가신용등급이 BBB-로, 투자부적격 직전 단계까지 몰려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도 재정난에 직면해 있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15%에 해당하는 980억달러의 재정적자를 기록한 사우디아라비아는 연료 보조금을 대폭 줄이고, 국내 휘발유 가격은 최대 67% 인상하기로 했다.

산유국들의 부도 위험도 급등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최근 3개월간 457bp(1bp=0.01%포인트) 치솟으며 5348.17bp의 기록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에너지 기업들도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영국의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은 이날 북해지역을 포함, 석유 시추 및 생산 사업부에서 4000명을 감원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저유가로 인한 BP의 감원 규모는 2014년 말 기준 전체 직원의 약 17%에 해당하는 2만명에 근접했다. 브라질 국영석유업체 페트로브라스도 2015~2019년 설비투자 규모를 기존 130조3000억달러에서 984억달러로 25% 삭감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유가가 배럴당 30달러 밑으로 추락하면서 미국의 에너지 기업의 약 3분의 1이 파산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미 총부채가 130억달러를 넘는 30여개의 소규모 기업들은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이 신문은 시장조사기관 자료를 인용, 현재 유가 수준에서는 미국 에너지 기업들이 매주 20억달러의 손실을 입게 된다며 업계 전체가 심각한 위기라고 전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