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조업 경기의 ‘바로미터’로 꼽히는 구리값이 한때 파운드당 2달러 아래까지 떨어졌다. 원자재 기업들의 주가도 바닥을 모르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중국 경기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식어가고 있는 데다 공급 과잉이 쉽사리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제조업 바로미터' 구리값 2달러 깨졌다…중국 경기위축에 급락
◆중국 경기 식어간다…커지는 불안

8일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 7일 런던금속거래소(LME)와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오는 3월 인도 예정인 구리 선물 가격이 장중 한때 전날 종가보다 4.7% 낮은 파운드당 1.99달러까지 내려갔다. 구리값이 2달러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09년 이후 6년 만이다. 장이 끝날 무렵엔 소폭 반등해 파운드당 2.022달러(전날 종가 대비 3.2% 하락)에 마감했다.

올 들어 중국 경제 둔화 우려 등으로 증시가 두 번이나 조기에 장을 마감하는 등 불안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구리값도 영향을 받았다. 철과 알루미늄 다음으로 많이 쓰이는 금속인 구리는 전선 등을 제조하기 위한 핵심 원료여서 제조업 경기의 선행지표로 불린다. 이 때문에 ‘닥터 구리’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중국의 구리 소비량은 세계 소비량의 45%를 차지한다. 중국 경제가 빠르게 둔화된다는 소식은 곧 ‘구리 소비량이 줄어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2009년 세계 경제가 크게 위축됐을 때도 구리 가격은 2달러 미만에서 7개월간 머물렀다. 이후 경기가 반짝 회복세를 보이며 2011년 초엔 파운드당 4.5달러까지 값이 치솟았지만 이를 정점으로 다시 떨어지고 있다.

◆원자재社 주가 1년 새 40~80%↓

'제조업 바로미터' 구리값 2달러 깨졌다…중국 경기위축에 급락
구리 가격을 비롯해 각종 원자재 가격이 폭락하면서 관련 기업의 주가도 지난 1년 새 40~80% 폭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광산업체 앵글로아메리칸 주가는 지난 1년간 79% 떨어졌다. 작년 3월 1270달러 수준이던 주가는 7일 240.65달러까지 내려갔다. 중국 증시 조기 마감의 충격파가 컸던 7일 하루에만 10.85% 떨어졌다.

다른 기업들의 사정도 비슷하다. 스위스 광산개발 및 원자재 유통업체 글렌코어의 주가가 1년 새 70%, 브라질 철광석업체 발레 주가는 69%, 세계에서 가장 큰 철광석 회사인 호주 BHP빌리턴 주가는 50% 주저앉았다.

BHP빌리턴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브라질 광산지대에서 댐 붕괴 사고가 일어나 대규모 인명 피해와 환경 훼손이 벌어진 데 대한 손해배상 책임도 져야 할 판이다. 글렌코어와 앵글로아메리칸은 주주 배당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공급과잉 지속…더 떨어질 수도

전문가들은 구리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최대 수요국인 중국의 경기가 둔화하는 가운데 공급량이 쉽사리 감소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케네스 호프먼 블룸버그인텔리전스 금속·광업부문 애널리스트는 블룸버그통신에 “(구리는) 파운드당 2달러 아래로 가격이 더 내려가지 않으면 ‘의미있는’ 수준의 감산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생산원가보다 가격이 더 떨어져야 감산이 이뤄질 텐데 파운드당 2달러는 아직 감산보다는 생산이 유리한(변동비용 이상의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이라는 뜻이다.

데인 데이비스 바클레이즈 애널리스트도 “2달러 미만의 가격이 장기간 유지되지 않는다면 관련 회사들의 결정엔 변화가 없을 것(감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호황기에 공사를 시작한 초대형 광산들이 최근 속속 완공되고 있는 것도 원자재업계의 주름살을 늘리고 있다. WSJ에 따르면 앵글로아메리칸, 리오틴토, 글렌코어 등이 2009년 전후에 짓기 시작한 구리 및 철광석 광산 가운데 상당수는 최근 완공됐거나 조만간 완공될 예정이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