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은 한진중공업의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 실시 여부를 8일 본격 논의하기 시작했다. 산업은행은 이날 다른 채권 금융회사에 한진중공업 현황과 자율협약 신청 배경 등을 설명했다. 채권단은 자율협약 적용을 오는 14일께 결정할 예정이다.
한진중공업, 대출 연장 못받고 '자율협약' 내몰려
◆실적 나아지는 데도 대출 연장 거부

산업은행은 이날 회의에서 한진중공업의 자율협약 신청은 △지속적인 영업손실 발생 △보유자산 매각 지연에 따른 유동성 확보 차질 △금융회사의 조선·건설업 리스크 관리 강화에 따른 차입금 상환 압박 가중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업계에서는 적자를 내고 보유 자산을 제때 매각하지 못한 한진중공업에 1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금융권이 대출만기 연장 및 신규 대출을 꺼린 탓에 실적을 회복하고 있는 기업이 자율협약을 신청하게 이르렀다고 보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자율협약을 신청하면서 운영자금 2000억원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진중공업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약 1조6000억원이다. 산업은행 5000억원, 하나은행 2100억원, 우리은행 1500억원 등 주로 은행권 대출이다. 반면 처분할 수 있는 자산은 인천 북항 배후 부지와 동서울터미널 건물 및 토지 등 2조4000억원 정도다.

부채비율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303%로 현대중공업(234%)을 제외하면 조선업계에서 낮은 편이다. 회사채는 지난해 모두 상환했다.

실적도 회복세다. 지난해 3분기에는 약 565억원의 흑자를 내는 데 성공했다. 6분기 만의 흑자전환이다. 지난해 3분기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주요 조선사들은 대부분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일감도 충분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진중공업의 수주실적은 2014년 13억3000만달러(약 1조6000억원), 2015년 15억달러(약 1조8000억원) 등으로 꾸준하다. 회사 관계자는 “3년치 물량을 확보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큰 문제가 없는 한진중공업이 2000억원을 마련하지 못해 자율협약 신청에 내몰린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은행들이 대출만기 연장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한진중공업이 자율협약을 신청하지 않았어도 됐다는 설명이다. 대형 조선사 관계자는 “지난해 2분기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등 주요 조선사들이 1조원 이상의 적자를 내자 은행들이 조선업종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내걸고 대출만기 연장 및 신규 대출을 거부하고 있다”며 “비가 올 때 우산을 빼앗는 은행 때문에 조선업계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진重, 부동산·자회사 지분까지 매각

금융권에선 한진중공업의 자산 매각이 늦어진 것이 문제라고 보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2014년 이후 총 6621억원 규모의 부동산을 매각했다. 부산 암남동 토지를 매각해 594억원을, 서울 및 부산 사옥을 매각해 1497억원을 확보했다. 일곱 차례에 걸쳐 인천 북항 배후 부지를 총 4530억원에 매각했다.

한 금융회사 임원은 “2조4000억원 규모의 매각 가능한 자산이 있는데도 이를 유동화하지 못한 것은 한진중공업의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이 임원은 “채권단이 한진중공업에 인력 구조조정을 비롯한 비용 절감 노력을 요구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가 나빠져 매수 희망 기업이 줄었고, 회사가 원하는 가격을 받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한진중공업은 자회사인 대륜E&S를 상장해 유동성을 확보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대륜E&S를 상장하면 한진중공업은 2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증권업계의 분석이다.

도병욱/김일규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