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묘를 찾은 일본인 관광객이 제례복식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한경DB
서울 종묘를 찾은 일본인 관광객이 제례복식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한경DB
4반세기에 걸쳐 한·일 관계의 걸림돌이 돼 온 위안부 문제가 두 나라의 정치 리더십으로 인해 비로소 타결됐다. 그동안 위안부 강제 연행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한반도 출신자의 징용은 불법이었는지 등의 역사 논쟁에 많은 관료와 지식인 등 양국 엘리트들은 에너지를 빼앗겼다. 두 나라 일부 국민은 서로를 증오하기까지 했다.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최대의 사회 문제는 청년 취업난과 노인 빈곤이다. 필자도 서울에서 취업이 안돼 괴로워하는 우수한 청년이나 불안하게 핸들을 다루며 심야까지 일하는 고령의 택시 기사 모습을 본다. 그때마다 한·일 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기회 손실이 없었다면 이런 젊은이와 고령자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토요우라 준이치
토요우라 준이치
한·일 양국 정부가 ‘최종적으로 불가역적인 해결’에 합의한 후에도 반목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어떤 합의라도 반대만 하는 일부 운동가들을 제외하고는 두 나라의 대다수 국민이 머지않아 ‘최종 결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일이 조기 타결에 합의한 것은 아시아의 지도적 지위에 있는 양국에 할 일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이전부터 “빨리 한국과 안보 협력을 진행하고 싶다”고 말해 왔다. 북한은 작년 5월9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수중 발사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북한이 SLBM이 장착된 신형 잠수함을 실전 배치할 경우 오키나와와 괌의 미군 기지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도 위협을 받는다. 일본과 한국은 북한 잠수함을 끊임 없이 감시할 태세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방위 기밀을 널리 공유하는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 체결을 서둘러야 한다.

일본과의 GSOMIA 체결은 한국 안보에도 유익하다. 예를 들면 한국군은 잠수함을 상공에서 감시하는 해상초계기(P3C)를 16기밖에 보유하고 있지 않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은 동해 서해 남해를 각각 상시 감시하는 P3C가 한 대밖에 없어 한반도를 둘러싼 넓은 바다를 모두 커버할 수 없다. 그러나 71기의 P3C를 보유하고 있는 일본의 해상자위대는 세계 유수의 초계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일 간 협력은 한국의 안보 강화에 확실히 도움이 된다.

한국 측은 아직 자위대에 대한 알레르기가 강해 일본과의 GSOMIA 체결에 대해선 한민구 국방부 장관도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일본의 방위당국도 한국에 넘겨준 정보가 북한과 중국에 흘러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신뢰에는 시간이 걸리지만 북한은 그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경제 분야에서도 과제는 많다. 한국이 우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승낙이 필요하다. 한국은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를 문제 삼아 2013년 9월부터 후쿠시마 등 8개 현에서 나오는 수산물을 전면 금수 조치했다. 일본은 이에 대해 지난해 8월 세계무역기구(WTO)에 분쟁처리소위원회 설치를 요청했다. 일본은 동일본 산리쿠산 멍게 생산량의 70%를 소비하던 한국이 출하 전성기인 올여름까지 금수를 해제하기를 강력히 요구할 것이다.

한국인 징용자가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손해 배상을 청구한 재판에서 일본이 우려하는 자산압류 등의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큰 현안은 사라진다. 이때부터 한·일은 제3국에서의 공동 자원개발이나 인프라 수출 등 윈윈 관계를 구축하는 영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취업·비즈니스·사회 분야에서의 협력이다. 요미우리신문 서울지국은 평소 정치 외교 안보가 취재의 주요 관심사이지만 일본에서 출장오는 동료들을 보면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을 배우려 하고 있다. 대학 입시 제도, 스포츠 선수 육성, 의료, 외국인 근로자 고용 등의 분야가 그렇다. 일본과 한국은 저출산 고령화와 교육 등에서 비슷한 사회 문제를 안고 있다. 게다가 1965년 국교 정상화 때와 달리 한·일 간 압도적인 경제 격차는 없다. 오히려 경제 성장 엔진 육성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내걸고 있다. 필자는 거기에 미래 구상의 힌트가 있다고 생각한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최병호 전 원장을 취재한 적이 있다. 청년 취업난 해결의 비책을 물었을 때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일본을 보라.” 한국 학생은 차츰 일본에 유학해 취업과 창업 기회를 노리고 한·일 정부와 경제계는 일본을 배운 젊은 인재를 활용해야 한다는 제언이었다.

한·일 양국에 걸친 롯데그룹을 이끌고 있는 신동빈 회장은 지난해 여름 “앞으로는 일본의 업계가 재미있어 질 것”이라며 일본 기업 인수 의지를 들려준 적이 있다. 한·일 기업들이 상대국에서 사업 기회를 발굴할 여지가 아직 많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주요 대기업과 함께 설립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취재할 땐 “창업 아이디어만 있으면 일본 젊은이도 대환영이다. 주거부터 창업자금까지 모두 지원할 것이다”는 말도 들었다.

한·일의 젊은이들이 상대국 무대에서 창업가 정신을 겨루는 모습. 필자가 보고 싶은 미래 모습이다.

토요우라 준이치 toyo8020@yomiur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