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국경제학회(AEA) 연차총회에서는 디지털 기술을 통해 기존 통화정책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파격적인 주장이 나왔다.

지폐가 사라지는 대신 디지털 통화가 제로금리라는 기존 통화정책의 하한선을 없애고, 양적 완화에 따른 부작용도 없애면서 적극적으로 경기를 부양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마일즈 킴볼 미시간대 교수는 4일(현지시간) ‘디지털 통화’를 주제로 한 세션에서 “(유럽중앙은행(ECB)의 마이너스 정책금리처럼 일시적이고 비정상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기존 통화정책의 가장 큰 장벽이었다”며 “새로운 수단을 강구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지금의 국제통화시스템이 과거 금본위제를 벗어던진 것처럼 지폐를 대신할 디지털 통화 사용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중앙은행이 종이화폐를 발행하고 시중은행이 예금과 대출을 통해 통화를 유통시키는 한 금리를 0% 밑으로 떨어뜨리기는 어렵다”며 “하지만 개인이 보유한 자산의 가치를 암호화한 코드 형태의 디지털 통화로 전환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시간 전자결제가 가능한 디지털 통화를 통해 수수료 등 거래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킴볼 교수는 “각국 중앙은행이 디지털 통화를 도입하면 경기침체 시 시중은행이 맡긴 예치금에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시중에 돈을 푸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며 “사실상 제로금리 하한선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클 쿰호프 영국중앙은행(BOE) 연구원은 “2009년 비트코인이 나온 뒤 중앙은행 차원에서 디지털 통화 도입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까지 연구 결과는 중앙은행이 거래당사자에 대한 확인과 통제권을 가진다면 디지털 통화 사용으로 경기 변동성이 줄어들고, 금리 조정에 대한 의존도가 떨어지면서 경제성장률도 올라가는 등 유연한 정책수단으로서의 순기능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일부 참석자는 현재까지는 가능성으로만 남아있을 뿐 시기상조라는 반박도 제기했다. 이날 토론에 나선 앤드루 로스 UC버클리 교수는 “디지털 통화 사용이 피할 수 없는 흐름이고, 바람직한 방향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실현되기에는 아직 먼 얘기”라며 “감독과 규제를 둘러싼 정부의 역할과 중앙은행의 독립성, 익명 거래의 허용 여부 등 실제 도입까지는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