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신임 농협은행장 "경영목표 매번 달성못한 농협은행…'중간만 하자'는 적당주의 때문"
“농협은행은 출범 이후 단 한 번도 연초에 정한 경영 목표를 달성한 적이 없습니다. ‘중간만 하자’는 적당주의를 비롯해 타파해야 할 관행이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이경섭 신임 농협은행장이 4일 서울 중구 농협은행 대회의실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농협은행 조직과 임직원들을 향해 거침없이 쓴소리를 쏟아내 화제다. 그는 “연공서열, 지역 안배, 느리고 둔한 조직 문화가 농협은행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신년 덕담과 격려를 기대했던 농협은행 직원들은 예상치 못한 이 행장의 강한 자성론에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이경섭 농협은행장
이경섭 농협은행장
그러나 이 행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쓴소리를 이어갔다. 이 행장은 “농협은행은 겉모습은 일반 은행과 같지만 경영 방식은 아직 중앙회 시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특유의 온정 문화로 인해 특정 산업에 대한 과도한 여신 지원 등이 이뤄지기도 했다”고 꼬집었다. 또 “역량을 갖추기도 전에 무리하게 추진한 글로벌 파생상품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투자의 여파가 아직도 남아있다”고 비판했다.

농협은행은 총자산 251조원으로 대형 시중은행과 비슷하지만, 지난해 1~3분기 누적 순이익은 4300억원 수준으로 신한, 국민은행의 절반에 불과하다. 조선·해운 등 위험 업종에 여신이 집중돼 대손충당금 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 행장은 “글로벌 경기 침체와 국내의 저성장·저금리 기조, 인터넷은행 출범 등 금융환경 급변을 감안할 때 농협은행은 일류 은행으로 도약하느냐 삼류 은행으로 추락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고 지적했다.

성과주의 확산에 대한 의지도 밝혔다. 그는 “경쟁 은행보다 낮은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한다”며 “능력 있고 우수한 성과를 낸 직원이 보상받는 생동감 있고 능동적인 조직 문화를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3분기 기준 농협은행 직원은 1인당 약 8800만원의 이익(충당금 적립 전 이익 기준)을 낸 반면 신한은행은 1인당 1억3300만원에 달하는 이익을 냈다.

이 행장은 계좌이동제 시행과 핀테크(금융+기술) 확산 등 금융시장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농협은행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자산관리와 핀테크, 글로벌사업은 성장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공격적으로 뛰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쟁력 있는 부문은 자원을 집중 투입해 핵심 수익원으로 키우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업은 과감하게 축소하고 중단해 과거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했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민낯을 여과 없이 드러낸 이 행장의 취임사가 처음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과감한 변화 없이는 갈수록 심화하는 수익성 악화를 타개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신임 행장의 임기는 2년으로 2017년 12월31일까지 농협은행을 이끈다. 그는 1986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한 뒤 인사팀과 수신부, 농협금융 경영지원부·서울지역본부장 등 주요 부서를 두루 거쳤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