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는 요즘…

"담합 적발 80%가 리니언시…제재하면 누가 자수하나"

공정위 "득보다 실이 클 것"
최근 공정거래위원회 안팎에서 ‘리니언시(담합 자진신고자 과징금 감면 제도)’ 무력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법무부가 리니언시를 통해 공정위로부터 과징금과 검찰 고발을 면제받은 ‘담합 자진신고 기업’에 손해배상 청구 등 민사소송을 잇따라 내면서 담합 기업들이 리니언시를 외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이 공정위 조사 결과를 토대로 담합 자진신고 기업의 임원을 기소하고 있는 것도 우려를 키우고 있다.
담합 자진신고 과징금 면제 '받으나 마나'…법무부, '리니언시' 기업들에 국고손실 환수 소송 잇따라 제기

전문가들은 사법부의 개입으로 기업들이 리니언시를 외면하게 될 경우 결과적으로 리니언시의 긍정적 기능이 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담합 조사의 상당 부분을 리니언시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공정위의 담합 적발을 제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 국고손실환수송무팀은 지난해 9월 출범 이후 현재까지 국가기관 발주 공사에서 담합을 통해 부당이익을 거둔 건설사들을 상대로 총 네 건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네 건 중 세 건은 공정위가 리니언시를 활용해 담합을 입증한 사건이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에 따라 담합 자진신고 기업엔 과징금을 면제하고 검찰 고발을 안 했지만 법무부는 담합 자진신고 기업에도 100억원대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정거래조세조사부(부장검사 한동훈)도 지난달 대림산업, 대우건설, 포스코건설, 현대산업개발 등 네 곳에 대해 ‘화양~적금 3공구 해상도로 공사’에서 담합한 혐의로 관련 임원들을 불구속 기소했다. 공정위는 당초 담합을 자진신고한 대림산업과 현대산업개발을 공정거래법에 따라 고발하지 않았지만 검찰은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두 업체 임원도 기소했다.

법무부 측은 건설업체들의 담합으로 손실을 본 국가를 대리해 민사소송을 제기한 것이라서 공정위의 과징금과 검찰 고발 면제와는 다른 차원이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도 공정거래법이 아닌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혐의를 건 것이라서 문제가 될 게 없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법부 판단이 리니언시 무력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담합을 자진신고해 공정위 처벌을 면제받더라도 법무부와 검찰의 제재가 기다리고 있다면 어떤 기업이 리니언시를 활용하겠냐는 것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담합을 한 것은 잘못이지만 이를 뉘우치고 공정위 조사에 협조했는데 검찰 수사, 법무부의 소송까지 직면하게 되면 ‘이중고’를 겪게 되는 것”이라며 “리니언시를 활용할 유인이 감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에선 리니언시가 무력화되면 공정위가 담합 사건을 적발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공정위에 따르면 2014년 과징금을 부과한 담합 사건의 78.6%, 2013년의 경우 82.1%에서 리니언시가 활용됐다.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사소송과 공정위의 행정처분, 형사고발 면제는 별개인 측면이 있지만 담합 자진신고 기업 감소로 리니언시의 효용성이 떨어지면 담합 1차 적발 기관인 공정위의 조사 역량이 낮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정위의 공식 입장은 “법무부와 검찰의 움직임은 공정위와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자칫 정부 부처 간 갈등으로 비치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공정위 내부에선 법무부와 검찰 움직임에 대해 불만이 적지 않다. 공정위 관계자는 “법무부의 민사소송과 검찰 기소는 100% 공정위가 발표한 담합 조사 결과를 기초로 진행되고 있다”며 “리니언시 무력화로 공정위의 담합 적발 및 제재가 어려워지게 되면 전체 국가 경제에도 득보단 실이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법무부와 검찰이 리니언시가 배제된 담합조사가 얼마나 힘든지 모르는 것 같다”며 “리니언시 무력화로 공정위 담합조사의 손발이 묶이게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리니언시

leniency.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을 자진 신고한 기업에 과징금을 감면해주고 검찰 고발을 면제해주는 제도. 처음 신고한 업체에는 과징금 100%, 2순위 신고 기업엔 50%를 감면해준다. 국내에선 1997년 제도가 도입돼 1999년 처음 활용됐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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