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합병, 해외 공략, 요우커 모시기…세계는 지금 '면세점 대전(大戰)'
스웨덴 관광통계전문기업 제너레이션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면세점 시장은 635억달러로 집계됐다. 한 해 전보다 5.8% 증가한 규모다. 글로벌 유통·소비재 기업의 지난해 매출 증가율(2.9%)의 두 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지속적으로 성장 중인 면세점 시장에서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선진 면세점 기업들은 덩치 키우기 경쟁에 힘을 쏟고 있다. 면세 상품구매력을 키우고, 소비자에게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규모의 경제를 이뤄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스위스 면세점 기업 듀프리가 두 건의 인수합병(M&A)을 통해 글로벌 1위 자리를 공고히 한 게 대표적이다. 2013년 기준 글로벌 1위 면세점 기업은 미국 DFS였다. 듀프리는 세계 2위였지만 DFS와 격차가 큰 편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스위스 뉘앙스(7위)를 인수하며 지난 10년간 줄곧 세계 1위 자리를 지키던 DFS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올 들어 미국 월드듀티프리까지 사들이며 DFS와 격차를 더 크게 벌렸다. 듀프리는 지난 10월 월드듀티프리 지분 93.45%를 확보하며 인수작업을 마무리했다.

1위를 빼앗긴 DFS는 반격을 준비 중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추가 면세점 설립을 추진하는 등 대대적인 확장 계획으로 응수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선진기업들의 M&A와 점포 확대를 통한 ‘몸집 불리기 경쟁’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인수합병, 해외 공략, 요우커 모시기…세계는 지금 '면세점 대전(大戰)'
마틴 무디 무디리포트 회장은 “세계 면세점업계는 대형화, 전문화를 통한 글로벌 경쟁력 향상에 사활을 걸고 있다”며 “글로벌 20위 이내 기업 사이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추가적인 M&A가 당분간 잇따를 것”이라고 진단했다.

DFS가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확장을 추진하는 것은 두 나라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요우커)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펑 비즈니스 정보센터에 따르면 중국인은 올해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비롯한 해외에서 쇼핑에 약 260조7000억원을 쓸 것으로 추정된다. 5년 후인 2020년의 해외 쇼핑 지출액은 올해의 두 배에 육박하는 480조4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이다.

글로벌 컨설팅회사 베인&컴퍼니에 따르면 명품시장 소비자는 지난해 3억5000만명이고, 이 가운데 30%가 중국인이다. 면세점업계 관계자는 “중국인이 세계 소비시장의 ‘큰손’으로 자리매김했다”며 “요우커를 유치하기 위한 글로벌 면세점 전쟁이 갈수록 치열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과 인접한 아시아 국가들이 ‘요우커 모시기’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만은 중국 샤먼에서 2㎞ 떨어진 진먼섬에 지난해 5월 에버리치면세점을 열었다. 진먼섬을 방문하는 관광객의 약 80%가 중국인이다. 진먼섬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2013년 116만명에서 지난해 131만명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처음 ‘글로벌 톱10’ 면세점에 이름을 올린 태국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올 상반기 태국의 외국인 관광객 1489만명 중 중국인은 400만명으로 26.9%를 차지했다. 6개월 만에 지난 한 해 중국인 방문객(462만명)의 87%가 태국을 찾았다. 이들이 쇼핑 등 관광에 지출한 돈은 6조839억원으로, 지난 한 해 소비액 6조3500억원의 96%에 달했다.

일본 백화점 미쓰코시이세탄은 서일본철도, 후쿠오카공항빌딩과 함께 내년 4월께 후쿠오카 미쓰비시백화점에 시내면세점을 열 계획이다. 일본공항빌딩이 주축이 돼 인공섬 오다비아에 면세점을 포함한 복합리조트를 건설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중국 역시 국민의 쇼핑 수요를 중국 내에서 흡수하기 위해 면세점 확장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 8월 하이난섬에 자국민 면세 혜택을 주는 세계 최대 면세점 CDF몰을 열었다. 내년 초 면세점 한 곳을 추가로 열 계획이다. 중국 사회과학원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여행을 떠난 중국인은 1억1400만명으로 한 해 전보다 16% 늘어났다.

한국도 요우커를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을 선점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면세점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함승희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면세점 시장에서는 구매력과 직결되는 ‘규모의 경제’가 핵심 역량”이라며 “국내 면세사업자들도 적극적인 해외시장 공략을 통해 몸집을 키우고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