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시장이 21일 기준금리 인상 여부를 결정하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일주일 앞두고 금리 인상 지연에 무게를 두고 움직이고 있다.

금리선물과 채권시장에서는 금리 인상이 내년으로 미뤄질 것으로 예상하는 투자자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금리 인상 가능성을 우려하며 신흥국 주식과 채권시장을 떠났던 투자자들도 3개월여 만에 복귀했다.

금리 인상 지연설에 따른 달러 약세로 신흥국 통화가치가 상승했고 금값도 덩달아 뛰었다.

신흥국을 중심으로 시장의 방향타가 금리 인상 지연을 향해 있어 '깜짝 금리 인상'이 있을 경우 시장이 받을 충격은 클 것으로 보인다.

◇ 금리선물·채권 시장 "미국 금리 인상은 내년으로"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의 연방기금(FF) 금리선물 시장에서 투자자들이 예상하는 12월 기준금리 인상 확률(전날 기준)은 30.4%로 나타났다.

12월에 금리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은 9월 초 60%에 육박했지만 한 달 새 반 토막이 났다.

이달 금리 인상을 예상하는 투자자들은 6%에 불과했다.

한 달 전 10월 인상을 예상한 수치(20%)보다 14%포인트 떨어졌다.

대신, 내년으로 금리 인상이 미뤄질 것이라는 전망은 더욱 힘을 받고 있다.

내년 1월(38.8%)과 3월(52.3%) 인상 전망은 연내 인상보다 상대적으로 많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채권시장 투자자들도 81개월째 이어진 제로 금리 시대가 상당히 길어질 것이라는 데 베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미국 경제지표가 실망스럽게 나온 점이 금리 인상 연기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갈수록 낮아지는 상황도 미국이 쉽게 금리를 올리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에 힘을 보탰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경제장률 전망치를 3.1%로 이전보다 0.2%포인트 내렸다.

IMF 전망대로 나온다면 올해 세계 성장률은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이후 최저로 떨어진다.

특히, 최근에 나온 중국의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로 세계 경기 우려감은 더욱 커졌다.

3분기 중국의 GDP 증가율(6.9%)은 2009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7.0%를 밑돌았는데, 이마저도 통계 신뢰성 논란에 휘말린 상태다.

세계 경기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커지자 연내 인상을 예고한 바 있던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도 한 발짝 물러선 태도를 보였다.

스탠리 피셔 연방준비제도(연준) 부의장은 지난 12일 한 세미나에 참석해 미국의 연내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놓으면서도 "이는 예상일 뿐 약속이 아니다"라고 말해 금리 인상이 내년으로 미뤄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 지연설에 신흥국 금융시장은 반색했다.

미국 금리 인상은 신흥국 통화와 주식 등 위험자산의 회피 심리를 강하게 만드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 신흥국 주식시장 14주만에 순유입…통화가치 급락 주춤
시장정보업체인 EPFR에 따르면 지난 14일까지 1주일간 신흥시장 주식펀드로 7억3천800만달러가 순유입했다.

신흥국의 주식자금이 주간 단위로 순유입 상태를 보인 것은 14주 만에 처음이다.

같은 기간에 신흥국의 채권시장(+3억7천800만 달러)도 12주 만에 순유입으로 돌아섰다.

이미선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미국 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 완화로 글로벌 펀드로 자금 유입이 재개됐다"며 "달러 약세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아시아 신흥국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순매수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신흥시장으로 자금이 들어오면서 주식시장에도 훈풍이 불었다.

신흥국 주가는 지난달까지 월별 기준으로 3∼4개월 마이너스 수익률을 보였지만 이달에는 강세로 돌아섰다.

한국 코스피(전날 종가 기준)는 이달 들어 3.90% 올랐다.

월별 기준으로 중국 상하이종합지수(10.91%)는 물론 대만(5.77%), 태국(5.39%), 싱가포르(8.17%), 베트남(4.94%) 등 아시아 신흥국의 대표주가도 반등했다.

브라질(5.30%)과 러시아(10.00%) 주가도 이달에는 상승 흐름을 보였다.

신흥국 통화가치는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에 추락을 거듭했지만 이달 들어서는 강세를 나타냈다.

달러 대비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가치는 이달 들어 7.42% 올랐고 한국 원화도 4.83% 상승했다.

말레이시아 링깃(2.52%), 브라질 헤알(1.57%), 러시아 루블(4.92%),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4.51%) 등 위기의 신흥국 통화가치도 오름세를 보였다.

금융시장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면서 신흥국 부도위험도 낮아졌다.

시장정보업체 마킷에 따르면 한국의 5년 만기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에 붙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전날 기준)은 62.85bp(1bp=0.01%포인트)로 집계됐다.

이는 연고점(82.43bp, 9월29일)과 비교해 20bp 떨어진 수치다.

말레이시아(195.48bp)와 인도네시아(204.42bp). 브라질(436.31bp) 등의 CDS프리미엄도 연고점 대비 40∼100bp가량 하락했다.

다만, 중국 등 신흥국 경제 위기감이 여전하고 금리 인상이 완전히 사라진 재료가 아니라는 점에서 경계감을 유지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 금값 상승세…"새로운 금리 인상 지표로"
최근 금 가격은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12월물 금값은 지난 15일 온스당 1,187.50달러로 지난 6월 19일(1,204.00달러) 이후 최고로 올랐다.

이후 소폭 조정을 받아 온스당 1,170달러선으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이달 들어 상승 흐름은 뚜렷하다.

상품시장에서 보통 달러로 거래되는 금의 특성상 금값은 달러화 가치와 반대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최근 들어 약달러 현상이 강해지면서 달러의 대체자산인 금이 강세를 보였다.

호주 NAB은행의 라이 비안 연구원은 "미국 기준금리 인상이 미뤄질 것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어 투자심리가 금값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값이 미국 기준금리 인상 여부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새로운 '금리 지표'로 떠올랐다는 분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안전자산인 금 가격은 전통적으로 정치·경제 위험도에 따라 크게 흔들렸지만 최근에는 미국 연준이 언제 기준금리를 올릴 것인가에 좌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값이 최근 상승 분위기로 돌아섰지만 남은 기간에 상승세를 이어갈 것인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블룸버그가 41명 전문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금 가격이 작년 연말과 비교해 오른 채 마감할 것으로 내다본 사람의 비율은 48.7%(20명)였다.

달러 가치와 반대의 방향성을 가진 원자재가격도 이달 들어 상승세를 탔다.

CRB 지수는 지난 9일 202.68을 기록해 7월 30일(204.71) 이후 2개월 반만에 가장 높이 올랐다.

CRB 지수는 원유를 비롯한 구리, 니켈 등 19개 원자재 선물 가격을 기반으로 한다.

(서울연합뉴스) 김남권 기자 kong7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