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정주영 탄생 100년] 정진홍 울산대 석좌교수 "나는 부유한 노동자"…끝까지 고집한 까닭
아산(峨山)은 현실이 아무리 어려워도 늘 긍정적이었다. 모두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일에도 과감하게 도전했으며, 상식과 관성적인 사고를 깨뜨리며 창조적으로 일을 수행했다. 그런 비범한 태도가 ‘성취’의 기반이 됐다.

그런 긍정과 도전 정신, 창의성은 그에게서만 가능한 비범함일까. 그렇다면 아산을 ‘하늘이 낸 사람’이라든지 ‘한 시대의 영웅’이라고 묘사하면 된다. 하지만 그의 생애를 살펴보면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난 게 아니었다. 살면서 깨달은 것이었다. 다시 말해 우리도 아산처럼 긍정적이고, 도전적이며 창조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1985년 현대차 포니 엑셀 발표회장의 정주영 회장.
1985년 현대차 포니 엑셀 발표회장의 정주영 회장.
아산이 긍정, 도전, 창의적인 삶을 살도록 한 바탕은 무엇일까. 그만의 특정한 자아의식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대체로 인간의 자아의식은 그가 무엇을 겪었고 무엇을 기대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회상의 내용과 희구의 내용이 현재의 나를 빚는 것이다. 사람들은 과거를 보내면서 현재로, 현재를 보내면서 미래로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지금의 자아를 짓고 살아간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과거가 지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고, 미래가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 지금 살아 있는 것으로 경험하는 자아도 있다. 이런 자아는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와 대화할 수 있고 아울러 미래의 나와도 대화할 수 있다.

첫 번째 자아는 과거-현재-미래가 지속적으로 흐르는 통시적인 인식지평 안에 있다. 그러나 두 번째 자아는 그 셋이 공존하는 공시적 인식공간을 갖고 있다. 보통 사람은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현실에 반응하고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러나 아산은 그렇지 않았다. 지금의 자기를 ‘부유한 노동자’라고 할 만큼 그는 과거의 노동자였던 자아와 대화할 수 있었고, ‘우리의 자동차가 세계를 휩쓰는 날’이 오는 것을 보는 미래의 자아와 대화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상황적인 긍정을 할 수밖에 없지만 그는 항시적인 긍정이 가능했고, 우리는 드러난 조건만을 따져 일에 착수하지만 그는 잠재된 가능성을 보고 도전을 감행했다. 그가 항상 상황초극적인 열린 상상력을 지닐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의 비범함과 우리의 평범함의 차이는 무엇인가. 우리가 선(線)의 세계에 있다면 아산은 공간의 세계에 있었고, 우리가 단일한 자아로 사고하고 행동한다면 그는 중첩된 세 자아로 사고하며 행동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과거-현재-미래의 중첩된 자아의식을 가지고 현실을 직면한다면 아산 못지않은 성취를 실현할 수 있다. 그의 비범함은 하늘이 내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늘을 감동시켜 얻은 것이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정진홍 < 울산대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