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원자재 거래업체인 스위스 글렌코어 주가가 28일(현지시간) 런던 증시에서 하루 만에 30% 가까이 폭락했다. 2011년 상장 이후 하루 낙폭으로는 최대를 기록해 이날 하루에만 시가총액의 약 3분의 1인 35억파운드(약 6조3658억원)가 사라졌다. 원자재 가격이 앞으로도 더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해 주요 원자재 생산국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된다.

○원자재 가격의 바닥 없는 추락

글렌코어 주가는 올 들어 77% 급락했다. 영국 FTSE100 편입 종목 중 최악의 성적이다. 가장 큰 이유는 원자재 시장 침체다. 글렌코어는 구리뿐만 아니라 직접 석탄광산을 운영하고 있고 원유까지 취급하고 있다. CNN은 글렌코어 주가가 최근 배출가스 조작 스캔들에 휘말린 폭스바겐 주가보다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다며 세계 최대 원자재 수요국인 중국에서 비롯된 신흥시장의 성장 둔화 우려가 상품시장을 강타한 탓이라고 분석했다.

세계 3대 알루미늄 생산업체인 미국 알코아가 이날 회사를 2개로 분리하기로 결정한 것도 알루미늄 수요 부진에 따른 경영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서다. 글렌코어 지분 8.2%를 보유한 카타르 국부펀드는 올 3분기에 글렌코어 투자로만 27억달러(약 3조2000억원)의 평가 손실을 입었다.

[공포에 질린 원자재시장] 세계 최대 원자재 거래업체 주가 하룻새 30% 폭락
런던금속거래소(LME)에 따르면 구리 니켈 등 금속과 석탄, 철광석 등 원자재 가격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주요 식품과 에너지, 금속 등 19개 주요 원자재 가격을 반영한 CRB지수는 2009년 11월 이후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고, 골드만삭스의 원자재 가격지수는 최근 1년 사이에 38% 추락했다. 1년 새 철강(-64%) 몰리브덴(-50%) 니켈(-41%) 백금(-30%) 아연(-29%) 구리(-27%) 알루미늄(-20%) 납(-20%) 은(-17%) 석탄(-15%)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은 대부분 큰 폭으로 하락했다.

○유가 하락에 말라가는 오일달러

국제유가 하락으로 중동 산유국들의 오일달러도 급격히 줄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맡긴 투자금을 거둬들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중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최근 6개월간 최대 700억달러 규모의 해외 자산을 회수했다고 29일 전했다.

FT는 사우디 정부가 경제 성장과 예멘 내전 개입을 위한 재정지출로 유가 하락이 시작된 지난해 중반 이래 외환보유액이 730억달러 줄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사우디 통화청(SAMA)이 재정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올해 들어 자산운용사와 헤지펀드 등을 통해 운용하던 해외 투자금 중 최대 700억달러를 회수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사우디 정부의 재정 적자 규모가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 7530억달러의 20% 정도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하향 조정 예고된 세계 성장률

글로벌 경제 성장의 부진이 지속되면서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 압력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이날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IMF가 올해와 내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경제 성장의 둔화가 원인이다. 라가르드 총재는 “올해 세계 경제가 3.3%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며 “내년도 전망치 3.8% 역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말했다.

씨티그룹도 최근 중국 경제 둔화 우려로 내년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1%에서 2.9%대로 낮췄다. 씨티그룹은 “세계 경기 침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심각한 위험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10월1일 나오는 중국의 9월 차이신(財新) 구매관리자지수(PMI) 확정치가 잠정치 47.0과 비슷한 수준으로 나오면서 최근 7년6개월 이래 가장 저조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이상은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