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시는 한국전력이 당진시 송악읍 복곡리에 건설할 예정인 북당진변환소의 건축허가 신청을 지난달 25일 반려했다. 작년 말 이후 세 번째다. 한전이 지난해 11월 첫 시도한 건축허가 신청을 당진시는 “변환소 주변마을 주민의 반대 민원을 먼저 해결하라”며 반려했다.
꼬리무는 억지·생떼…"한국에 공장 짓는 게 무섭다"
한전은 민원을 해결한 뒤 지난 4월 다시 건축허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당진시는 지난달 “지방건축심의회 승인을 먼저 받으라”며 신청서를 또 돌려보냈다. 한전은 지방건축심의회 승인을 받아 곧바로 건축허가를 재차 신청했다. 그 결과가 지난달 25일 ‘반려’로 나온 것이다.

전력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2차, 3차 반려 사유는 전례가 없다”며 “당진시가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시비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한전은 당진시의 조치에 대해 최근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한전과 산업부는 당진시의 ‘몽니’ 배경에 경기 평택시와 당진시 간의 ‘영토 분쟁’이 숨어 있다고 보고 있다. 평택과 당진 사이 바다를 매립해 생긴 96만2350㎡의 땅 상당 부분은 기존 도(道) 경계를 나누는 관례대로라면 당진시 관할이 돼야 한다. 그러나 올해 5월 행정자치부가 이 땅을 평택시 소속으로 편입시키면서 당진시와 평택시 간 갈등이 시작됐다. 당진시는 5월 법원에 소송까지 제기한 상태다. 이 갈등으로 당진시가 평택으로 가야 하는 전력 시설의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김기서 당진시 경제산업환경국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북당진변환소 건축허가를 반려한 배경에는 평택시와의 도 경계 문제가 있다”고 인정했다. 지역 간 경계 갈등으로 기초자치단체가 전력을 볼모로 삼는 사상 초유의 희극이 연출된 것이다.

북당진변환소는 당진화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직류전기를 교류로 바꿔 평택을 포함한 경기 남부와 충청 북부 등으로 보내는 시설이다. 평택에는 단일 공장 투자액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15조6000억원을 투입하는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이 들어선다. 축구장 400개 크기의 공장이 2017년 완공되면 약 41조원의 생산 유발과 15만여명의 고용 창출 효과가 기대된다. 현재 가동 중인 기흥과 화성 반도체공장까지 연결하면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라인이 된다. 당진시가 볼모로 잡은 북당진변환소가 착공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늦어지면, 평택 반도체공장의 가동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당진시의 잇따른 건축허가 신청서 반려로 북당진변환소는 2018년 6월 준공 목표를 이미 지키기 어려워졌다고 한전 관계자는 설명했다.

채희봉 산업부 에너지산업국장은 “당진에서 생산한 전기를 보낼 수 없으면 삼성전자뿐 아니라 인근 고덕산업단지에 입주할 협력업체들도 피해를 본다”며 “기존 전력공급 루트에 문제가 생기면 경기 남부지역에 대정전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지금으로선 당진시가 북당진변환소의 건축허가를 내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한전의 예상이다. 김 국장은 “중앙정부가 도 경계 설정 때 평택시의 편을 든 것에 당진 시민들이 분노하고 있어 변환소 건축허가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도 경계 문제가 해결돼야 건축허가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당진시가 대법원에 제기한 ‘당진평택항 매립지 귀속 결정 취소 소송’ 결과는 최장 4년 후에나 나올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모처럼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평택 반도체공장 건설이 애먼 요인으로 불똥을 맞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당진화력발전소에서 평택으로 들어가는 다른 전력 계통인 안성에 송전탑을 건설하려고 하자 안성시의회와 안성에 지역구를 둔 김학용 새누리당 국회의원 등은 전남 나주에 있는 한전 본사까지 찾아가 시위를 벌였다. 안성 송전탑은 아직 부지 선정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엔 평택시의 지역살리기 비상대책위원회가 “삼성전자 공장 건설에 필요한 중장비와 건설자재, 인력, 식자재를 모두 평택에서 해결하라”고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