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앞날이 가시밭길이다.

한국 경제가 2분기에 사실상 제로성장에 머무는 등 저성장이 고착화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대외악재가 갈수록 증폭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로 이 나라 경기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졌다.

한국은 중국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이 나라 경제가 흔들리면 직격탄을 맞는다.

신흥국들은 부도위험 수치가 올라가면서 외환위기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신흥국이 위기상황에 빠지면 국제금융시장 불안을 초래하고 이는 한국의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타격을 준다.

올해안으로 예정된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도 세계 금융시장을 흔들 재료여서 한국은 물론, 전 세계 각국의 당국과 경제주체들이 긴장상태로 주시하고 있다.

◇ 커지는 중국 경기 둔화 우려
중국이 최근에 단행한 위안화 평가절하는 세계 금융시장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이 자국 수출 증진을 위해 '환율 카드'를 내놓자 중국 경기에 대한 우려감은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지난 11일 위안화 가치를 전격적으로 1.86% 절하했고 위안화 가치 하락은 13일까지 사흘 연속 이어졌다.

인민은행은 이례적인 평가절하 조치를 하면서 기준환율 결정방식을 바꿔 시장조성자들의 환율과 전날 종가 환율을 모두 고려해 고시하겠다고 밝혔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 기반통화(바스켓) 편입을 위해 환율결정 체계를 시장친화적으로 바꿨다는 평가도 나왔지만 시장은 중국 경기 불안을 주목했다.

각종 부양책에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자 중국 당국이 수출 확대를 위해 위안화 가치 절하라는 극약처방까지 내놨다는 분석이 나왔다.

소시에테제네랄 야오웨이 연구원은 "각종 경제지표가 부진하게 나오면서 중국 경제는 여전히 거대한 하락 압력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도 이번 위안화 절하 조치가 수출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라고 명시적으로 밝힌 바 있다.

중국 경기에 대한 우려는 시장에 그대로 반영됐다.

중국의 환율 대책 이후 세계 주요국의 주식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한국 원화를 비롯해 태국 바트화, 필리핀 페소화, 호주 달러화 등의 통화가치가 큰 폭의 하락세를 보이는 등 아시아 외환시장도 크게 출렁였다.

중국의 환율 조정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분석에 지난 13일부터 각국 주식시장이 안정을 되찾는 모습을 보였지만 중국발 악재는 언제든 터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중국 정부가 자국 수출 진작을 위해 위안화 절하 카드와 같은 대책을 다시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경기에 대한 우려가 여전한 상황에서 이웃 나라 희생을 통해 자국 경제 회생을 꾀하는 '근린궁핍화 정책'은 언제든 나올 수 있다.

◇ 중국까지 가세, 환율 전쟁 심화
중국은 그동안 유럽과 일본 등 다른 나라 기업들이 양적완화에 따른 통화 약세의 혜택을 누리는 것을 지켜만 봤다.

국제결제은행(BIS) 조사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1년간 위안화 가치는 14.0% 올라갔다.

일본 엔화와 유로화가 각각 12.1%, 9.2% 떨어진 것과 대조를 이뤘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위안화 가치 절하는 무역 경쟁국 통화의 평가절하 추세에 맞춰 '환율 전쟁' 대열에 합류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됐다.

크레디트아그리꼴 CIB는 보고서를 통해 "위안화 절하는 글로벌 환율전쟁에 참전하겠다는 인민은행의 열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의 위안화 절하로 다른 국가의 중앙은행도 자국통화 절하에 나설 수 있다.

경쟁적인 통화 절하 동력이 생긴 가운데 전 세계적인 교역 둔화는 각국의 양적완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논리다.

호주와 한국, 인도 등에서는 최근 몇 달 사이 중앙은행들이 자국 통화 가치를 낮추고 수출을 끌어올리려고 정책 금리 인하에 나선 바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의 위안화 약세로 아시아 국가들이 환율 전쟁에 직면했다"고 전했다.

물론 중국의 조치로 환율 전쟁이 재점화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달러 대비 신흥국 통화가 이미 많이 절하된 상황에서 중국의 위안화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바클레이스의 미툴 코테차 환·금리 전략 책임자는 블룸버그에 "중국이 통화 절하를 주도한다기보다는 (다른 신흥국들과 비교해) 부족한 부분을 따라잡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 부도위험 급등…신흥국 외환위기 가능성도
국제금융시장과 시장정보업체 마킷에 따르면 한국의 5년 만기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에 붙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지난 14일 기준 59.18bp(1bp=0.01%포인트)로 나타났다.

부도위험 지표인 한국의 CDS 프리미엄은 중국 인민은행이 위안화 전격 인하를 발표하기 직전인 지난 10일보다 6.6% 올랐다.

지난 13일에는 한국 CDS 프리미엄이 63.10bp까지 치솟아 올해 2월 12일(63.96bp) 이후 6개월여 만에 최고로 올랐다.

현재 한국의 부도 위험 지수는 현재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우려와 중국 주가 폭락으로 전 세계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진 지난달 초보다도 높은 상태다.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신흥국들의 부도 위험도 급등했다.

특히 인도네시아(루피아)와 말레이시아(링깃) 통화 가치는 세계 금융위기가 휘몰아친 2008년보다 낮고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신흥국의 외환위기 가능성이 심심찮게 나오는 가운데 중국 위안화 절하를 둘러싼 잡음도 끊이지 않고 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1994년에 단행된 중국의 위안화 평가 절하 조치를 꼽는 분석도 있기 때문이다.

허재환 KDB투자증권 연구원은 "1994년 위안화가 절하된 이후 중국 무역흑자는 확대됐고 한국, 태국 등의 무역수지는 큰 폭으로 나빠졌다"며 "1994년 위안화가 절하된 후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 미국 금리인상, 신흥국에는 '설상가상'
지난 5월 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재닛 옐런 의장이 올해 안으로 기준금리를 올릴 것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자 시장에서는 금리 인상 시점에 촉각이 쏠렸다.

그동안 미국 기준금리 인상이 올해 9월에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편이었다.

최근 불거진 위안화 쇼크로 '9월 금리 인상설'이 누그러드는 분위기도 있었다.

위안화 평가절하 충격이 서서히 수그러들면서 연준이 다음 달 기준금리 인상을 그대로 진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이 이달 7∼12일 금융시장 전문가들에게 9월 금리 인상 가능성에 대해 물은 설문조사에서 '인상될 것'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77%였다.

지난 11일 중국의 위안화 절하가 시작되자 설문에 이미 응답한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바꿀 기회를 줬지만 9월 인상을 예상한 사람의 비율은 지난달 76%에서 소폭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은 세계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높이는 재료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유동성이 급격히 줄면 신흥국 시장에서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외화 보유액이 적고 총외채 대비 단기외채 비중이 높은 국가들은 특히 미국 금리 인상 과정에서의 취약국가로 분류된다.

시장에선 브라질,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위험할 것으로 분석한다.

한국은 경상수지 흑자와 외화보유액 등을 고려할 때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국가로 꼽히지만 안심할 수만은 없다.

자금 유출 강도가 다른 신흥국보다 덜 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지만 한국이 미국발(發) 긴축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신흥국의 불안에 따라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 한국 시장도 작지 않은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남권 김경윤 기자 kong79@yna.co.kr, heev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