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의회가 3차 구제금융 지원 조건으로 국제 채권단이 요구한 개혁법안을 16일 새벽(현지시간) 격론 끝에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채권단과의 3차 구제금융 협상이 본격 시작된다.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은 “이번 주말 유럽재정안정기구(ESM) 이사회가 협상 개시를 공식 확정할 예정”이라고 이날 밝혔다. 예룬 데이셀블룸 유로그룹 의장은 협상 타결까지 약 4주가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그리스 의회는 전날 오후 2시부터 법안 관련 논의를 시작해 11시간이 넘는 회의 끝에 새벽 2시가 다 돼 전체 300명 의원 중 찬성 229표로 개혁법안을 통과시켰다. 집권 여당인 시리자의 강경파 의원들과 야니스 바루파키스 전 재무장관, 공산당 의원 등 64명은 반대표를 던졌다. 6명은 기권, 1명은 불참했다. 통과된 개혁법안은 부가가치세(VAT) 인상, 연금 축소, 통계청의 독립성 보장, 예산 삭감 등 총 4개 법안이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표결에 앞서 “다른 대안이 없다”며 의회 승인을 촉구했다.

유로그룹과 유럽중앙은행(ECB)은 법안 통과를 환영하며 이날 그리스에 대한 지원책을 쏟아냈다. 유로그룹은 70억유로의 브리지론을 그리스에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3개월 만기의 단기자금인 브리지론으로 그리스는 오는 20일 ECB의 채무 35억유로를 상환할 수 있게 됐다.

ECB는 그리스 은행에 대한 긴급유동성지원(ELA) 한도를 기존 890억유로에서 899억유로로 9억유로 증액한다고 발표했다. 숨통이 트인 그리스 시중은행들은 단계적 영업 정상화에 나설 수 있게 됐다. 그리스 관영 ANA-MPA 통신은 그리스 모든 은행이 20일부터 영업을 재개할 것이라고 이날 보도했다. 다만 하루 60유로 인출 한도와 해외 송금 제한은 유지된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그리스에 대한 채무 경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그리스 채무는 이미 국내총생산(ECB)의 180%에 달한다”며 “어떤 형태로든 채무 경감이 필요하다는 건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최근 채무를 탕감하거나 만기를 30년 연장하는 방법으로 그리스의 채무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진행될 채권단과 그리스 간의 구제금융 협상에서 채무 경감이 최대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