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등·10조 수주…부회장은 '실적의 신'
주요 10개그룹 부회장 29명은 모두 ‘영웅적인 스토리’를 갖고 있다. 적어도 해당 회사 직원들에게는 그렇다. 전투적 노조를 설득해 3년 연속 무분규를 이끌어냈거나(윤여철 현대자동차 부회장), 영업이익을 열 배 가까이 끌어올리는(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등의 ‘신화’를 썼다. 이런 업적을 바탕으로 이들은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그렇다고 이들이 입사 초기부터 ‘정상’을 목표로 했던 것은 아니다.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은 첫 직장인 삼성물산에 다닐 때만 해도 무역업무를 배워 ‘오퍼상’이 되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 한 대기업 부회장은 “처음 회사 생활을 시작할 때는 임원이 된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며 “대충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반드시 맡은 일을 해내겠다는 마음으로 일하다보니 여기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지독한 노력파…‘독기’는 기본

대기업 부회장들은 기본적으로 ‘노력파’다. 노력파 중에서도 지독한 노력파다.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정도를 넘어서 ‘사람이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독하게 일하는 경우가 많다. 박진수 LG화학 부회장은 한번 공장을 찾으면 4~5시간씩 쉬지 않고 구석구석을 살핀다.

최지성 실장은 198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1인 소장으로 일할 때 1000쪽짜리 원어로 된 기술교재를 달달 외워 부임 첫해 반도체 100만달러어치를 팔아 상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인원 롯데 부회장은 롯데쇼핑 대표 시절 궁금한 것이 생기면 직원들을 불러 설명을 듣는 대신 바로 백화점 매장을 찾아갔다. 불시에 ‘대표님’을 맞닥뜨린 직원들은 당황하기 일쑤였다. 이원태 금호아시아나그룹 부회장은 금호고속 사장 시절 매일 오전 6시에 터미널로 출근해 처음 출발하는 버스를 직접 점검했다.

보통 수준을 뛰어넘는 놀라운 성과

단순히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부회장이 될 수는 없다. 뛰어난 성과를 내야 한다. 단순한 성과가 아니다. 사장 위의 자리인 만큼 업계 상식을 뛰어넘는 성과가 뒷받침돼야 한다. 양웅철 현대자동차 연구개발(R&D)담당 부회장은 사장 시절 독일과 일본보다 기술적으로 한참 뒤져 있다는 세간의 분석을 뒤엎고 쏘나타 하이브리드 조기 양산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도 사장 시절 삼성 내 ‘2류사업’으로 불리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세계 1위에 올려놓았다.

정지택 두산중공업 부회장도 마찬가지다. 정 부회장은 2008년 7월부터 3년6개월간 두산중공업 최고경영자(CEO)로 일했다. 그는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난 뒤 약 2년 만인 지난해 12월 두산중공업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과거 CEO 시절 연간 10조원이 넘는 ‘대박’ 수주 기록을 세운 정 부회장 외에는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는 두산중공업을 구할 사람이 없다는 게 두산그룹의 판단이었다.

김연배 한화생명 부회장은 한화그룹에서만 47년의 근속 연수를 자랑한다. 이 기간 실무와 그룹 관리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그는 1968년 한화증권에 입사해 한화그룹 전무, 한화투자증권 부회장 등을 지냈다. 외환위기 이후인 1999년부터 2002년까지 구조조정본부 사장을 맡아 한화그룹 구조조정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당시 ‘사내 회장’으로까지 불릴 정도로 막강한 위상을 자랑했다. 2002년 현업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지난해 한화생명이 실적 악화로 위기에 빠지자 12년 만에 다시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김승연 한화 회장의 신임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오너의 의중을 정확히 읽는 것도 부회장에게 필요한 자질로 꼽힌다. 서경석 (주)GS 부회장은 허창수 회장이 “나는 서 부회장과 생각이 정확히 일치한다”고 말할 정도로 신뢰를 얻고 있다.

외부 영입도 적지 않아

부회장 중에는 외부에서 영입된 사람도 적지 않다. 총 26명 중 10명이 외부 출신이다. 장관급 출신이나 특정 분야 전문가를 영입하려다보니 ‘부회장’이라는 타이틀을 얹어주는 경우가 많다. 제임스 비모스키 두산 사업부문 부회장은 24년간 컨설팅업계에서 일했다. 맥킨지에서 일할 때 두산의 오비맥주 매각을 주도하며 박용만 두산 회장의 눈에 들었다. 화려한 경력의 외국인이지만 막걸리와 한국 음식을 즐기는 ‘두산맨’이라는 게 직원들의 설명이다.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은 LG로 오기 전에 경쟁사인 KT 사장과 정보통신부 장관까지 지냈다. 구본무 LG 회장의 적극적인 ‘구애’가 영입 배경이다. 최근 업계 최초로 데이터요금제를 내놓는 등 혁신을 이끌고 있다. 현안이 생겼을 때 구 회장이 가장 신뢰하는 조언자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남윤선/송종현/김순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