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한미원자력협정문 공개…"확산위험 상당히 증가하지 않아야"

우리나라가 장기적 사용후 핵연료 관리 방안으로 검토하는 파이로프로세싱(건식 재처리)을 수행하려면 기술적 타당성과 핵비확산성 등 다각적인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내용은 16일 정식서명을 통해 공개된 개정 한미 원자력협정에 상세하게 포함됐다.

외교부가 이날 전문을 공개한 개정 한미원자력협정문은 양국 간 원자력 협력의 원칙을 담은 전문(前文)과 총 21개조의 본문, 2개의 합의의사록으로 구성돼 있다.

합의의사록에는 각각 협정의 구체적 이행과 한미 고위급위원회 설치에 관한 내용이 들어갔다.

이번에 새로 마련된 사용후 핵연료의 파이로프로세싱 및 미국산 우라늄 저농축의 추진 메커니즘은 협정 본문 11조와 첫번째 합의의사록에 기술됐다.

사용후 핵연료를 잘라서 분석하는 등 이른바 '형상·내용 변경' 활동에 대해 미국이 새롭게 동의한 내용도 같은 부분에 포함됐다.

본문 11조 1항은 "(재처리 및 형상·내용 변경이) 수행될 수 있는 시설에 관한 사항을 포함해 당사자들이 서면으로 합의하는 경우에만 이뤄질 수 있다"고 규정하고 세부적 합의 사항을 합의의사록에 담았다.

농축과 관련해서는 11조 2항이 한미 고위급위원회에서의 협의 등에 따라 양측이 서면 약정을 체결하면 20%까지 우라늄 농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우리나라가 저농축·파이로프로세싱을 추진하기 위해 따라야 할 기준과 절차가 상세히 담긴 합의의사록 내용이다.

한미 양국은 파이로프로세싱의 경제성과 핵비확산성 등을 검증하기 위한 공동연구를 2020년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순수한 플루토늄만을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해 핵무기 제조에 전용될 우려가 낮다고 평가되지만, 아직 검증이 끝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합의의사록은 연구 완료 후 양국이 사용후핵연료 관리·처결(disposition) 기술의 "추가적 개발 또는 실증을 위한 적절한 방안을 식별할 목적으로 협의한다"고 명시했다.

공동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협의하면 파이로프로세싱을 할 수 있는 길을 튼 것이다.

그러나 합의의사록은 우리가 파이로프로세싱을 할 수 있는 사실상의 '조건' 또한 규정하고 있다.

해당 사용후 핵연료 처리 방안은 기술적 타당성과 경제적 실행가능성이 있고 안전조치(세이프가드)도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한미가 서로 합의해야 이를 추진할 수 있다고 명시한 것이다.

아울러 해당 방안이 핵확산 위험을 '상당히' 증가시키지 않고 "(핵물질) 전용에 대한 적시 탐지와 조기 경고를 보장"하며, 재처리를 통해 회수된 핵물질이 "합리적으로 필요한 양을 초과"해서 축적되는 것을 피한다는 데 합의하도록 했다.

농축에 대해서도 기술적 타당성과 경제적 실행 가능성, 효과적 안전조치의 적용 가능성과 함께 "그러한 방안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장비, 구성품 또는 기술의 사용이 확산 위험의 상당한 증가를 초래할 것인지 여부를 고려한다"고 명시했다.

결론적으로 우리로 실제로 농축 및 파이로프로세싱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합의를 통해 겹겹의 '허들'을 넘어야 하는 것이다.

파이로프로세싱이 이들 조건을 충족시킬지를 판단하는 것은 한미 양국이 실제 협의해 나가는 과정에서 정치적 판단도 요구하는 첨예한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개정 협정은 서문에서 "평화적 목적을 위한 원자력의 연구, 생산 및 이용을 개발할 수 있는 NPT(핵무기비확산조약) 당사국의 불가양의 권리를 확인한다"며 "각 당사자의 주권에 대한 침해 없이 당사자들 간의 기존 협력을 확대하기를 희망한다"고도 규정했다.

기존 한미 원자력 협정이 우리의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해 불평등하다는 일부 지적을 불식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핵연료 공급과 관련해 미국 정부가 "대한민국에 대한 저농축 우라늄의 신뢰할 수 있는 공급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하고 실행 가능한 조치를 취하고자 노력한다"고 한 본문 8조도 개정 협정의 독특한 부분으로 꼽힌다.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kimhyo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