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2005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의 밑그림을 발표할 당시 법의 이름은 ‘자본시장통합법’이었다. 줄여서 ‘자통법’으로 불렸다. 증권업 자산운용업 선물업 종금업 신탁업 등 5개 자본시장 관련업종 간 칸막이를 허물고 6개 관련법을 하나로 통합해 붙인 이름이었다.

‘자통법’은 노무현 정부 시절 ‘동북아 금융허브’를 위한 핵심 과제 중 하나였다. 실무를 챙긴 것은 당시 금융정책국장이었던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었다.

김 전 위원장은 당초 은행 보험 증권을 모두 아우르는 ‘금융시장통합법’을 검토했지만 은행과 보험업계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법적용 대상을 증권 분야로 좁혔다. 그러고도 법 제정작업은 순탄치 않았다. 증권사에 지급결제를 허용하는 문제를 놓고 은행업계뿐 아니라 한국은행까지 나서서 반대했다.

이 와중에 미국 리먼브러더스 파산, 중소기업 ‘키코(KIKO) 사태’까지 잇달아 터져 국내외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당시 법 제정작업에 참여한 한 사무관은 “모두 금융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외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과연 자본시장법을 만들 수 있을지 회의감이 밀려들곤 했다”고 말했다. 자본시장법은 투자자 보호장치가 대대적으로 보완된 이후에 2009년 국회를 통과, 그해 2월에 시행됐다.

그러나 꽁꽁 얼어붙은 금융시장에서 자본시장법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정부는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구두지도, 자율규정 등으로 보이지 않는 규제를 양산했고 ‘불완전 판매’ 차단을 위해 투자자 보호장치를 겹겹이 쳐놨다.

2011년 금융정책 수장으로 올라선 김 전 위원장은 ‘공직을 건 마지막 작품’이라며 자본시장법 절반을 뜯어고쳐 ‘자본시장 빅뱅’을 재시도했다. 프라임브로커 도입으로 대형 투자은행(IB)을 육성하고 대체거래소(ATS)를 도입해 거래소 시장을 경쟁체제로 전환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ATS도, ‘한국판 골드만삭스’도 요원한 현실이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