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공유에 조합원 80% 찬성…협력사와 공생할 것"
SK하이닉스는 지난 7일 올 연봉 인상분(3.1%)의 20%(0.6%)를 협력사에 지원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금액으로는 60억~70억원 수준이다. 노사가 10%씩 부담한다. 노조로선 자신들이 받아야 할 연봉을 협력사에 지원하기로 한 것이어서 ‘파격적인 결정’으로 받아들여진다.

협력사와의 임금 공유 아이디어는 사측이 아닌 노조에서 먼저 냈다. 김준수·박태석 SK하이닉스 노조위원장은 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바꾸고 협력사 직원들과 공생하기 위해 노조가 먼저 나섰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경기 이천공장과 충북 청주공장에 각각 노조가 있다. 김 위원장은 청주공장 노조를, 박 위원장은 이천공장 노조를 이끌고 있다.

임금 공유 아이디어를 제안한 이유에 대해 박 위원장은 “사회적으로 양극화와 귀족노조, 정규직만을 위한 노조 등이 이슈가 되는 것을 보고 뭔가 변화를 이끌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오래전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여건이 어려워 시행하지 못했다”며 “지난해 최고 수준의 실적을 올리고 성과급을 받은 김에 ‘올해 바로 실천하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협력사와 임금을 나누는 것에 “왜 내 돈을 협력사에 줘야 하느냐”는 반대도 있었다고 한다. 두 위원장은 협력사가 처한 어려운 현실을 조사해 조합원에게 설명하며 양해를 구했다.

김 위원장은 “조사 결과 협력사 연봉 수준은 SK하이닉스의 60% 정도밖에 안 됐다”며 “협력사에 주기로 한 0.3%(임금인상률 3.1%의 10%)는 우리 생계를 좌우하는 돈이 아니지만 협력사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있고, 결과적으로 회사의 경쟁력에 기여할 것이라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도 “처음엔 ‘노조가 괜한 일을 한다’는 지적을 받을까봐 걱정했지만 의외로 80% 이상이 찬성하는 등 지지율도 높았다”고 했다.

SK하이닉스는 이천 노조가 1987년 처음 생긴 뒤 지금까지 무분규 기록을 갖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노조가 앞장서 “회사를 살리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번 임금 공유 결정도 노사가 터놓고 의견을 나눌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김 위원장은 “채권단 관리, 해외 매각 위기 등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느낀 건 ‘노사는 공동운명체’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도 “사측은 매달 투자, 재무 등 경영에 관한 사항을 노조와 투명하게 공유한다”며 “지난해 규정까지 바꿔가며 사상 최고 수준의 성과급을 주는 등 신뢰를 쌓고 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5조1095억원의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올린 뒤 직원들에게 연봉의 50%를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최근 일부 노조가 ‘연차만 차면 무조건 승진토록 하자’는 요구를 하는 등 기득권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김 위원장은 “다른 회사에 대해 말하긴 조심스럽다”면서도 “해외 대기업을 보면 고용을 보장받는 대신 연봉을 양보하는 등 노사가 서로 한 발씩 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보할 것은 양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임금 공유는 여건이 닿는 한 앞으로도 계속 추진할 계획이다. 박 위원장은 “곳간이 넘쳐서 나눠준 것은 아니다”며 “내년 임단협에서도 노조가 주요 안건으로 제시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