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서 못 배우니…금융지식 아시아 꼴찌 수준
금융교육을 국가 핵심 정책으로 격상시킨 나라는 유럽연합(EU)에서만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를 포함해 20개국에 달한다. 선심성 복지 예산을 퍼붓는 것보다는 정부 주도로 국민들의 금융 역량을 키우는 것이 사회안전망 확보에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선진국들이 저금리·고령화 추세에 맞춰 금융 공교육 확대 및 중장년층 금융 재교육에 힘을 쏟는 이유다.

이에 반해 한국은 초·중·고교에서의 금융교육을 확대하기 위한 시도가 역사, 지리, 윤리 등의 사회교과 편성에 얽힌 복잡한 이해관계에 막혀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전국 2400개 고교 가운데 금융 관련 교과서를 채택한 곳이 16곳(0.6%)에 불과한 실정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지난 4일 열린 한경 밀레니엄포럼에서 “금융교육 한 시간 추가를 요청했더니, 대신 어떤 과목을 줄이면 좋겠냐는 대답을 들었다”고 했다.

여기다 초·중·고교 12년을 합쳐 10시간도 안되는 금융교육 수업은 지금 분위기라면 2018년 교육과정 개편 때 오히려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는 게 금융권 관측이다. 역사교육을 강화하면서 전담교사도 없는 금융교육 수업이 희생양이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청사진 없는 금융교육

기획재정부, 교육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은 금융교육을 늘려야 한다는 원칙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어떻게’라는 방법론에 들어가면 교과 편성에 얽힌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에 휘둘려 제각각의 목소리를 내기 일쑤다.

정부 주도의 명확한 청사진이 없다 보니 금융교육은 줄곧 겉도는 모습이다. 2009년 기재부가 금융을 포함한 경제교육 주관기관으로 선정한 한국경제교육협회는 직원 횡령으로 최근 법인을 청산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매년 국고지원액 70억원 정도를 낭비한 셈이다.

금감원은 금융교육을 전담할 교사가 없다는 점을 감안해 작년 초부터 금융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추진 중이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못 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전례가 없어 모든 걸 새로 만들어야 하는 터라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체계적인 금융교육이 없다 보니 한국인의 금융지식 수준은 아시아태평양 주요국 가운데 하위권으로 조사됐다. 마스타카드가 지난해 실시한 금융이해도 조사에서 한국은 62점(100점 만점)에 불과했다. 아시아태평양 16개국 중 대만이 73점으로 가장 높았고 뉴질랜드와 홍콩이 각각 71점과 70점으로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한국 순위는 13위로 태국(7위), 중국(10위), 베트남(11위)보다 뒤처졌다.

○국내 은행도 ‘생색 내기’ 수준

민간 금융회사들이 제공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체계적인 금융교육이 아니라 재테크 수준 강의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공무원연금이나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금 개혁을 둘러싸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지만 정부와 국민연금공단이 연금 교육을 위해 지출하는 투자는 대형마트 등이 주부 대상 강좌를 위해 지급하는 강사비가 고작이다.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연금포럼 대표는 “국내에선 금융교육을 재테크 교육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많다”며 “정부는 무관심하고, 금융회사들은 마케팅용으로만 교육을 생각하다 보니 돈만 들이고 실속은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은행들은 순수 금융교육에 연 1억원 안팎을 투자하는 데 비해 씨티, 스탠다드차타드(SC) 등 해외 은행들은 금융교육에 상당한 공을 들인다. 전 세계 140개국에 진출해 있는 글로벌 씨티은행이 지난해 금융교육을 위해 뿌린 돈은 4433만달러(약 483억원)에 달한다. 글로벌 은행들은 해외 진출과 금융교육을 병행하는 전략을 취하기도 한다. 영국 SC은행은 저소득층 청소년을 위한 금융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해 지난해에만 바레인·카메룬·인도 등에서 1만3128명을 교육했다.

박동휘/박한신 기자 donghuip@hankyung.com